변양균 장관 e-메일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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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이 국회의원 299명 전원에게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헌법을 지켜 달라'는 내용의 e-메일을 최근 보냈다. 내년도 예산안을 헌법상 기한인 2일까지 처리해 달라는 호소를 담았다. 헌법 제54조는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제 조항이다. 다음해 예산이 국회에서 확정된 뒤 각 부처에서 집행계획을 수립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지방 예산안을 확정하려면 보통 30일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도 국회는 헌법을 위반할 게 확실하다. 정부 예산안을 여야가 2일까지 의결하는 것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아직 예산결산특위에서도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회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을 제외하고 1998년부터 계속 헌법을 어겨 가면서 예산안 통과를 늦추고 있다. 2003년에는 예산안이 12월 30일에, 지난해는 12월 31일 밤 11시40분쯤 통과됐다. 변 장관은 e-메일에서 "예산안 의결이 지연되면 59개 정부 부처와 16개 광역자치단체, 234개 기초자치단체가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새해 예산을 집행하게 돼 부작용과 비효율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국가 예산의 의결이 늦어지면 순차적으로 지방 예산도 확정하지 못해 지자체가 올해 안에 내년 예산을 짜지 못한다. 이에 따라 지자체는 내년 초에 급한 대로 기본 예산을 집행하기 때문에 비효율과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변 장관은 "이런 폐해는 정부에서 각종 공사나 물품을 발주받는 기업에도 나타나 결국 우리 경제의 몫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치적 쟁점을 타결하기 위해 예산안을 볼모로 삼은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매년 되풀이되는 헌법 위반이 옳다고 생각할 국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 "답장을 보낸 의원은 단 한 명뿐이었다"고 밝혔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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