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New tech New trend] 요즘 차, 고단수일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독일 부품사 ZF가 개발한 9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랜드로버 ‘이보크’의 차량 계기판. 9단 변속을 의미하는 숫자 ‘9’가 적혀 있는 계기판 사진에 그래픽을 합성했다. [사진 재규어랜드로버]

#지난달 12일 현대자동차가 담당 기자들을 경기도 화성 남양연구소로 불러모았다. 현대차가 자체적으로 설계·생산한 7단 더블클러치 트랜스미션(DCT·Double Clutch Transmission)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7단 DCT는 독일 폴크스바겐 등 일부 메이커만 제조 기술을 보유할 정도로 최첨단 기술이다. 설명회가 끝난 이후 현대차는 7단 DCT를 장착한 ‘엑센트 디젤’, ‘벨로스터 터보’, ‘i30 디젤’, ‘i40 디젤’과 폴크스바겐의 ‘골프 디젤’, ‘폴로 디젤 ’등 총 6대 차량을 비교 시승하도록 했다. 현대차의 변속감은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골프와는 비슷한 수준, 폴로보다는 좀 더 높은 점수를 줘도 무방할 정도였다.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들 사이에서 ‘다단 변속기’ 경쟁이 불고 있다. 최근 들어선 9단 변속기를 장착한 수입차들도 국내 시장에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독일 변속기 전문회사 ZF가 만든 9단 변속기를 채택한 크라이슬러의 중형 세단 ‘올 뉴 200’, 레인지로버 ‘이보크’ 등이 대표적이다. 국산차 중에는 현대차 ‘제네시스’와 ‘에쿠스’, 기아차 ‘K9’이 장착한 8단 자동 변속기가 단수로는 최고다.

 변속기는 엔진에서 나오는 힘과 회전 수를 조절해 운전자가 바라는 차량 성능에 맞게 바퀴에 전달하는 장치다. 고단 자동 변속기일수록 무겁고 가격이 비싸지만, 연비나 가속성능 향상에는 훨씬 유리하다. 변속기의 단수가 높아지면 속도가 올라갈 때 변속하는 찰나의 연료와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어 연비 개선에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같은 높이를 오를 때 계단이 5개일 때보다 8개일 때 쉽고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같은 속도로 주행해도 단수가 높으면 엔진 회전 수(rpm)가 낮은 상태에서 달리기 때문에 연료를 3∼8% 덜 쓴다.

하지만 다단화될수록 변속기 무게가 증가하기 때문에 기어 단수를 늘려 연비를 향상시키는 것보다 차체 무게 증가로 인한 손실이 더 클 수 있어 무작정 단수를 늘릴 수 만은 없다. 변속기 종류는 가장 기본적인 수동 변속기부터 자동 변속기, 무단 변속기, 더블 클러치(DCT) 등으로 나뉜다.

 자동변속기 개발은 1900년대 초반 독일이 시작했지만, 상용화는 1940년대 초 미국 제네럴모터스(GM)이 앞섰다. 초기엔 2단이었지만 이후 4단이 주류가 됐다. 1990년대 일본과 독일 업체가 5단 변속기를 개발하면서 경쟁이 가속화됐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02년에는 BMW가 독일 ZF의 6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한 ‘7시리즈’를 내놓으면서 다단화 경쟁에 불을 붙였다. 1년이 지난 뒤 메르세데스-벤츠의 모회사 다임러는 ‘7G-트로닉’이라는 이름의 7단 변속기를 내놓으면서 응수했다. 이후 4년간 다임러의 7단 자동변속기는 가장 앞선 기술로 꼽혔다. 하지만 2007년 도요타가 렉서스 LS를 통해 8단 변속기를 내놓으면서 ‘최고 단수’ 기록이 바뀌었다.

 2010년 이후에는 홀수·짝수 기어를 담당하는 클러치가 따로 있는 DCT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DCT는 변속기 구조 자체는 수동변속기와 같지만 클러치 페달이 없는 ‘자동화된 수동 변속기’ 형태다. 홀수 클러치(1·3·5단)와 짝수(2·4·6단) 클러치, 각기 다른 클러치 2개가 서로 자동적으로 맞물려 작동한다. 예를 들어 1단 기어가 가동 중인 상황에서 2단 기어가 미리 동력을 이어 받을 준비를 한다. 동력이 다시 2단으로 넘어가면 1단과 한조인 3단이 미리 준비하는 구조다.

 더블 클러치 변속기를 최초로 상용화한 곳은 폴크스바겐이다. 폴크스바겐은 2003년부터 대부분 차종에 더블 클러치 ‘DSG(Direct shift gearbox)’를 적용하고 있으며 메르세데스-벤츠 B클래스, 포르쉐 911 등에도 7단 더블 클러치가 적용됐다.

 여기에 현대차도 ‘연비 효율화 경쟁’에 돌입하면서 7단 DCT를 적용한 신차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지난달 출시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투싼’ 1.7 디젤 모델에도 7단 DCT를 장착해 연비를 1리터 당 15.6㎞까지 끌어올렸다. 현대차의 DCT는 토크 컨버터가 필요 없어 구조도 간단하고 연료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임기빈 현대차 변속기개발실장(이사)은 “현대차는 7단 DCT로 ‘고성능·고효율·친환경’을 요구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대응하고 있다”며 “2020년까지 현재보다 25% 연비를 개선하겠다는 현대차 ‘연비 향상 로드맵’의 첫발을 뗀 셈”이라고 말했다. 변속기를 개량해 글로벌 경쟁 업체 대비 낮은 수준으로 평가받는 현대·기아차의 연비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밝힌 것이다. 현대차의 경우, 경유(디젤) 차량과 직분사 엔진을 탑재한 ‘터보 모델’에 DCT를 적용하고 있다.

 변속기의 다단화를 미분 방식으로 극대화시키면 ‘무단변속기(CVT·Continuously Variable Transmission)’의 형태까지 발전한다. 변속 충격이 없어 부드러운 주행이 가능하고 연비를 향상시키는데 유리하다. 하지만 반응 속도가 늦고 단수가 한 계단씩 올라갈 때 발생하는 특유의 이질감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CVT를 애용하는 업체는 르노-닛산 연합(얼라이언스)이다. 국내 시장에서 팔리는 닛산 ‘알티마’와 ‘쥬크’, SUV ‘캐시카이’·‘패스파인더’를 포함해 르노삼성 ‘SM3’·‘SM5’·‘QM5’ 같은 모델에도 이 변속기를 얹었다. 최근에는 기술 발전으로 이질감도 크게 개선됐다. 또한 초기 반응과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보조 변속기를 내장한 CVT도 등장했다. 르노삼성 SM3와 한국GM ‘스파크’가 이런 형태의 CVT를 사용한다. 이 변속기는 CVT 개발의 선두 주자로 통하는 일본의 자트코(JATCO)가 공급한다.

 반면 수동 변속기 형태를 고집하는 메이커도 있다. 프랑스 업체인 푸조-시트로앵(PSA)이 대표적이다. 유럽 시장은 자동 변속기 모델보다 실제 연비가 30% 높은 수동변속 모델의 판매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푸조의 경우, 자체적인 반자동 형태 수동변속기(MCP·Mechanical Compact Piloted)를 308·2008 등 주력 모델에 투입해왔다. 그렇지만 자동 변속기를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은 수동 변속기 특유의 변속감 자체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면서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엠마뉴엘 딜레 PSA 부회장은 “수동변속기에만 집중한 전략은 실수였다”면서 “앞으로는 고품질 자동 변속기를 모든 모델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꿈의 변속기’로 불리는 10단 자동변속기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폴크스바겐과 현대·기아차는 10단 자동변속기를 개발 중이라고 공개한 바 있으며 미국 GM과 포드는 9·10단 변속기를 함께 개발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폴크스바겐은 새로운 10단 더블클러치 변속기를 골프 GTI·GTD·R 등 고성능 모델에 탑재할 예정이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