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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서툰 고려인 위해 동화 번역 … 1000권 나눠드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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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카란다쉬’ 멤버들. 이들은 “종종 ‘꼭 필요한 일을 해줘서 고맙다’는 고려인 동포들의 격려를 들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사진 카란다쉬]
카란다쉬가 제작한 전래동화 『해님달님』 샘플본. [사진 카란다쉬]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시절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한 한민족 동포들.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황무지나 다름 없던 중앙아시아 여러 곳에 터전을 잡아야 했던 동포들은 스스로를 ‘고려인’이라고 불렀다. 현재 국내와 해외에 50만 명에 달하는 고려인 4·5·6세대가 거주 중이다. 하지만 생활고와 더불어 열악한 한국문화 교육 환경 속에서 이들은 점점 고국을 잊어가고 있다. 지난해는 고려인 이주 150주년인 해였다.

 이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학생들이 뭉쳤다. 지난 2월 이들은 한러 전래동화 번역회 ‘카란다쉬’를 결성했다. 카란다쉬(Карандашей)는 러시아어로 ‘연필’이라는 뜻이다. 이들의 첫 프로젝트는 ‘고려인 전래동화 나눔 프로젝트’. 고려인 어린이들을 위한 전래동화책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카란다쉬의 일원인 대학생 이은찬(20)씨는 “고려인들을 얘기할 때 누구나 ‘우리 동포’라고는 하지만 그에 비해 사회적 관심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고려인 어린이과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한국 문화에 대해 제대로 알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카란다쉬는 먼저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전래동화 6편을 선정했다. 『흥부와 놀부』 『견우직녀』 『해님달님』 『은혜 갚은 까치』 『단군신화』 『효녀 심청』 등이다. 책에는 한국어와 러시아어, 두 언어 모두를 담았다. 동화에 들어갈 삽화는 전문가들의 재능기부를 받았다. 현재 6편 모두 완성된 상태고 정식 출판을 남겨두고 있다.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단순히 책을 제작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홍보, 출판, 배포 등 모두 학생들이 헤쳐나갈 몫이었다. ‘한 번 해보자’로 학생들끼리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는데 판이 점점 커졌다. 카자흐스탄 영사관 관계자까지 만나게 되자 책임감은 더욱 막중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건 역시 비용 문제였다. 카란다쉬의 목표는 이번 여름까지 안산 고려인 지원센터 ‘너머’와 광주 사단법인 ‘고려인 마을’에 200여 권,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러시아·우크라이나 등 국외 고려인 자치모임 및 기관에 700여 권 등 총 1000권을 배포하는 것이다.

요즘은 개인과 기업체로부터 출판 비용을 지원받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대학생 조현수(21)씨는 “목표량을 채우기엔 아직 재정적 지원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조만간 포털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모금 활동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카란다쉬는 이번 동화번역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고려인들을 위한 한글 수업, 동화책 앱 개발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프로젝트 지도와 감수를 맡은 김진규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고려인의 역사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학생들의 가슴 따뜻한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과 성원이 모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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