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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광전쟁, 역사전쟁보다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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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정치국제부문 차장

글 쓰기 전에 먼저 모든 택시 기사님이나 손님들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분명히 밝혀둔다. 아마 “난 아닌데…”라며 ‘욱’ 하실 분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 하지만 지난해 8월 도쿄 특파원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전보다 택시 타기가 더 부담스러워진 것은 사실이다. 꾹 참고 올라타야 할 정도로 청소가 안 된 차도 있고, 차 안에서 피운 담배 냄새를 빼려 한겨울에도 창문을 모두 열어두는 기사님도 있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기자가 ‘욱’ 하는 경우는 ‘내가 과연 손님 맞나’라는 느낌이 들 때다. 휴대전화 스피커폰으로 대화를 나누며 소소한 가정사까지 듣도록 강요하거나, 손님이 있든 없든 라디오 볼륨을 최대로 올려 놓는 분들이 있다. 도쿄 생활 3년간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택시 기사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적응이 쉽지 않다. 물론 반대로 손님 스스로가 대접받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택시 뒷자석에 올라탔더니 오른쪽 문 손잡이 부근의 움푹 들어간 공간에 아이스크림 ‘XX콘’의 껍데기가 버려져 있었다. 내용물이 잔뜩 묻어 있는 이 쓰레기를 직전 손님이 쑤셔 넣고 내린 모양인데, 기사님은 “인물도 좋고 옷도 잘 차려입은 20대 후반 여성이었는데…”라며 혀를 찼다.

 “유난 떤다”는 핀잔을 듣기 싫어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얘기를 굳이 꺼낸 것은 최근 읽은 신문 기사 때문이다.

 7년 만에 일본과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 경쟁에서 우리가 역전을 당했다는 뉴스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4개월 연속으로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한 이들보다 많았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신조 정권의 역사 도발이 더욱 험해지고, 양국 간 역사 갈등이 전 세계적 이슈로 번지는 상황이라 가슴 한편이 더욱 쓰리고 솔직히 약이 올랐다. 엔저 효과로 일본 여행 비용이 줄었고, 10년 이상 추진해 온 일본 정부의 관광 유치 드라이브도 결실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일본은 관광객 유치 최고 기록을 매달 경신하며,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계속 페달을 밟으려 한다.

 일본이 무서운 것은 엔저와 관광 정책, 스시나 온천 등의 히트 관광 상품처럼 눈에 보이는 무기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든 어떤 상점에 들어가든 부담스러울 정도로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친절함, 이슬람 관광객을 위해 기도 공간을 따로 마련하고 메카의 방향을 알 수 있도록 나침반까지 빌려주는 치밀함, 누구나 ‘잘 대접받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성의가 담긴 환대)가 엔저보다 더 무섭다. 같은 비용으로 더 좋은 서비스를 받고 싶은 것이 만국 공통의 인지상정이라면 외국인을 맞는 우리 국민 모두가 ‘관광 유치 한·일전’의 최전선 스트라이커들이다. 친절로 단련된 일본 국민 전체와 맞서야 하는 관광대전이 어쩌면 아베 정권, 우익 세력과 맞붙은 역사전쟁보다 더 어려운 싸움일지 모른다.

서승욱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