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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정부 6개월] 1. 국민이 외면하는 전자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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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온라인으로 국민과 기업에 최상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전자정부 서비스가 시작된 지 6개월이 지났다. 아직 시행 초기라고는 하지만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전자정부 서비스는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주요 수단으로 각국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다. 중앙일보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정부연구센터가 공동으로 국내외 취재를 통해 전자정부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안방에서 클릭 몇 번으로 민원을 해결한다'는 전자정부 슬로건은 공염불이다. 정보 공유가 안되는 반쪽 민원처리, 부처 간 이기주의로 인한 예산낭비, 허술한 법체계로 인해 이용이 불가능한 서비스 등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에서는 전자정부 사업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해 본궤도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외면당하는 전자정부 서비스=전자정부 사이트 이용률이 극히 미미한 것은 사이트 이용 방법이 어렵기 때문이다. 클릭으로 민원신청을 하는 것보다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로 신청하는 게 더 빠르다. 당연히 일반인들은 전자정부 사이트의 필요성을 못 느낄 수밖에 없다.

최근 주민등록등본을 신청하기 위해 전자정부 사이트에 들어간 김병탁(31.회사원)씨는 "공인인증을 받는 절차에 대한 설명을 찾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온라인 공인인증이란 이용자의 신분을 확인하는 수단이다. 정부가 지정한 4개 인증기관이 파일 형태로 온라인 발급을 한다. 하지만 이 공인인증서를 받기 위해서는 시중은행 등에 가서 직접 신청해야 한다. 이 같은 절차가 제대로 홍보되지 않아 대부분은 전자정부 포털사이트에 접속한 뒤에야 이 사실을 알고 당황하게 된다.

주민등록 등.초본 등 10여종의 민원서류를 뗄 수 있는 무인민원서류발급기(키오스크)의 이용이 저조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사용법이 잘 홍보되지 않아 동사무소 직원이 키오스크 옆에 대기해 민원인을 도와주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된다. 국민이 쉽고 편하게 민원서류를 떼가라고 설치한 키오스크지만 오히려 직원의 일거리만 늘어난 셈이다.

현재 전국의 동사무소.역 등에 설치된 키오스크는 총 8백35대. 올 4월까지 월평균 이용건수는 2백15건(대당)에 그쳤다. 지난 4월 조사에 따르면 수원 화서역.용인 풍덕천1동 등에 설치된 키오스크는 이용횟수가 한 건도 없었다.

◆부처 및 기관 이기주의 때문에 표류=정부 포털사이트에서는 호적 관련 민원 중 호적신청만 가능하고 출생신고.결혼신고 등 대부분의 민원은 불가능하다. 이는 대법원이 호적신청 민원에 대한 별도의 인터넷 서비스를 개발하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4대보험 통합 서비스도 연금.의료.고용.산재 등 4개의 보험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통합하면 바로 조직 통합으로 연결될 것을 우려한 노조의 반대에 부닥쳐 결국 좌절됐다. 하나의 ID로 로그인해 토털 사회보험 서비스를 받는 것은 결국 불가능해졌다.

온라인 서비스의 핵심은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24시간 가동시스템 구축이다. 하지만 한국의 전자정부는 행자부와 정통부가 서로 운영하겠다며 싸움을 하는 바람에 전산실이 통합되지 않아 공무원 근무시간 외에는 이용할 수 없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정부연구센터 황보열 교수는 "부처들의 이기주의를 조정하는 강력한 중재자가 없어 전자민원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성급한 추진에 법령도 미비=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은 당초 20개월로 예정된 사업기간을 무리하게 12개월 단축하면서 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1천9백16억원의 예산이 들어간 시군구 행정종합정보화사업도 토지지적.주민등록.차량 등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정보시스템 간에 연계가 되지 않아 작동에 애를 먹고 있다.

법령도 제때 손질하지 못했다. 전자정부 포털사이트를 통해 민원서류를 발급받지 못하는 것은 현행 주민등록법상 프린팅한 서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행자부는 최근 주민등록 등.초본 등 9종의 서류를 온라인으로 발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별도 개발키로 하고 사업에 착수했다. 또 주민등록법의 개정도 추진키로 했다. 처음부터 법과 시스템 활용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 또 돈을 들여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 셈이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전자정부팀 권헌영 박사는 "국회에 전자정부용 법령 손질을 위해 '전자정부위원회'같은 상임위 신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기획취재팀>
하지윤 차장, 김종윤.최지영.염태정.정현목 기자
공동기획=KAIST 전자정부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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