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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위기의 ‘광창우(廣場舞)’

중앙일보

입력

내가 처음 중국 베이징에 살면서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는 중국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여 춤을 추는 것이었다. 어느 날 새벽에 날이 밝을 무렵 산책을 위해 아파트를 나서자 어디선가에서 음악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따라 가보니 작은 공원이 있고 공원의 한쪽에서 중노년(中老年) 남여들이 모여서 집단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신기하여 한참 구경하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몇 년을 살다보니 공원뿐만이 아니라 로터리 등 공공 장소에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부터 가을 까지는 물론이고 한 겨울에도 두툼한 외투를 입고 연신 하얀 입김을 내뿜으면서 광장에 나와 춤을 추었다. 휴대용 카세트 레코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추는 각종 춤으로 보는 사람까지도 흥겹게 하였다
언젠가 중국의 지인(知人)을 만나 공원의 춤 이야기를 꺼냈더니 “광창우(廣場舞)!“ 하면서 깔깔거리고 웃는다. 별다른 취미가 없는 어르신들이 아침에 모여 운동하고 친구들도 만나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아침잠이 없는 지인의 부모도 눈만 뜨면 밖으로 나가시니 좁은 집에서 어른들 눈치 보느라고 못다 한 부부 간의 대화도 그 때 나눈다고 한다.
내가 처음 베이징에 근무할 때는 집들이 많지 않아서인지 소음공해(noise pollution) 이야기는 없었는데 요즈음은 공원이나 광장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매일 아침 들려오는 ‘광창우’의 음악 소리에 잠을 설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중국에서 광장이나 공원 등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집단으로 춤을 추는 이른 바 ‘광창우’(plaza mass dancing)는 1980년대부터 시작 되었다고 한다. 그 무렵 대도시가 정비되어 길이 쭉쭉 뻗고 공원이나 광장이 만들어졌지만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고 빈 땅이 많았다. 그런데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도시의 인구가 늘어나고 내 집 마련의 부동산 붐으로 허허벌판이었던 공원이나 광장 주변에 여유 공간 없이 빽빽이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이제 어지간한 공터는 사라졌다. 이때부터 ‘광창우’의 소음문제가 대두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1990년대 중반부터 국유기업의 구조 조정으로 대거 퇴직(退休)을 당한 50대의 젊은 할머니들이 ‘광창우’에 합세하였다. 그들은 주로 저녁 식사를 끝낸 후 화려한 유니폼까지 갖추어 입고 춤을 춘다. 중국에서는 광장에 나온 활기 찬 50대를 ‘광창우 따마(大?)’라고 부르고, 외지(外紙)에서는 ‘춤추는 할머니(dancing grannies)'로 소개하고 있다.
따마들은 1960-70년대 문화혁명 시 홍위병 경험에서 집체주의에 익숙하여 ‘광창우’에 일종의 향수를 느낀다고 한다. 그들은 매일 광장에 모여 확성기를 크게 틀어 놓고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沒有共産?, 就沒有新中國)!”는 노래를 부르면서 마오쩌둥(毛澤東)을 찬양하였던 홍위병 세대들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활기 찬 50대 따마들이 앞으로 증권계 부동산계의 큰 손, 해외관광의 큰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의 장롱예금이 중국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어 마치 과거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광창우’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개 청력이 쇠퇴한 어르신들이고 ‘따마’들은 소리가 커야 흥이 난다고 우정 음향기의 볼륨을 높이고 있어 주택가의 소음공해는 이만 저만이 아니다. 특히 입시생을 가진 부모들에게는 참기 어렵다. 주민들은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하였지만 당국이라도 20-30년 계속되어 온 ‘광창우’를 쉽게 중단 시킬 수는 없었다.
그간 경제성장에 집중하느라고 노인복지시설이 제대로 없는 중국에서 중노년들에게 아침저녁으로 광장에 나와 춤추는 것까지 막을 수가 없었다. 중국정부는 ‘광창우’를 사회주의 중국의 집단문화로 긍정적으로 보고 소음문제 대책에 소홀히 하였다.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1년 여 전 베이징에서는 소음을 참지 못한 한 남자가 공중에 향해 엽총을 쏘고 맹견을 풀어 광장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혼비백산 시켰다. 그리고 어느 지방도시에서는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물을 뿌리거나 고성능 확성기로 음향대포(경고음)를 쏜 사건도 있었다. 그 이후도 비슷한 사건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도시라도 농촌에서 올라온 지 오래지 않아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여 집집마다 서로 아는 사이라 대 놓고 불만을 터트리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급속한 도시화로 전국 곳곳에서 올라 와 서로 잘 모르는 주민이 많고 개인주의가 만연하여 옛날의 분위기는 사라진지 오래된다.
지방도시에 따라서는 저녁 9시부터 오전 7시까지 주택가에 소음을 내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물리는 특별 조례를 만들어 사실상 ‘광창우‘를 금지시키고 있다. 따마들도 스스로 같은 시간대에는 소음(?)을 내지 않겠다고 “자오인(?音)No (no noise)"라는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벌리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간의 분쟁이 심각해지자 국민 오락 스포츠를 담당하는 국가 체육총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신도시를 중심으로 아침저녁 운동만을 유도하기 위해 공원에 고정 운동시설의 설치를 권유하고 있다. 그리고 춤을 규격화하고 장소를 한정한다든지, 음악의 소리(데시벨)를 낮추거나 이어폰을 보급한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방안을 만들어 시행에 나서고 있지만 ‘광창우 따마’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주민들의 소음문제도 있지만 ‘광창우’는 이제 13억 중국인의 대표적인 놀이문화로 정착하였다. 중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는 좋은 관광 포인트(景点)가 되었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즐기는 ‘광창우 따마’들은 시간과 장소가 있는 한 여행지에서도 함께 모여 춤을 춰 중국의 ‘광창우’를 널리 알리고 있다.
아직도 1인당 7000미불 남짓하는 중국이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부유하기 전에 고령화(未富先老)의 현상에 부담이 되고 있는 중국에서 ‘광창우’는 큰 예산지출을 없이 중노년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중노년들을 ‘광창우’에서 쫓아내서는 안 된다. 중국의 경제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한 그들에게 은퇴 후 운동도 하고 팍팍한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면서, 친구들을 만나 친교도 다지는 ‘광창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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