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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중단 첫날, 양은 솥 학부모급식 등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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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경남 진주시 지수면 지수초등학교.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고 구인회 LG 회장 등이 다녔던 이곳 본관 뒤뜰에 이날은 커다란 양은솥 세 개가 걸렸다. 안에서는 닭백숙이 끓었다. 옆 대형 천막 안에는 김치와 두부, 파프리카가 밥상에 놓여 있었다. 무상급식 중단 첫날을 맞아 학부모들이 급식 대신 준비한 점심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본관 건물에서 어린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병설 유치원과 옆에 있는 지수중학교 학생까지 모두 79명이 '학부모 급식 점심'을 먹었다. 지수초교 학부모회 소희주(43·여) 감사는 "농사 짓는 가정 중에는 두세 자녀의 급식비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꽤 있다"며 "학생들 점심에 문제가 생길까 봐 학부모들이 공동으로 식자재를 대고 음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수초교 학부모회는 일단 2일까지 학부모 급식을 하고, 그 뒤에는 대처 방안을 따로 논의할 계획이다. 학부모 급식으로 인해 2일까지 학교 급식소는 문을 닫는다.

경상남도에서 무상급식이 중단된 첫날 풍경이다. 학부모들이 점심을 만들어 급식한 곳은 지수초교뿐이었다. 하지만 일부 학생이 도시락을 싸 오거나,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다시 오는 광경은 곳곳에서 벌어졌다.

경남도교육청에 따르면 이날 창원·진주시와 하동·함양군 등 12개 시·군 35개 초·중·고에서 학생 210명이 도시락을 싸오거나 집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거창군 웅양초교에서는 전교생 61명 중 28명이 도시락을 싸왔다. 창원 신방초교에서는 교사 38명 중 12명이 점심 때 식사를 하지 않고 식탁에 빈 식판만 올려놓는 단식을 했다. 일부 교사는 식판 위에 '급식도 교육입니다'등이 적힌 종이를 올려 놓기도 했다.

도시락을 가져온 것은 주로 농촌지역 학생들이었다. 농촌의 소규모 학교들은 식자재를 대량 할인 공급받을 수 없어 급식단가 자체가 도시지역보다 높다. 도시지역 초등학교는 하루 급식비가 2000원대 중반인 반면 학부모들이 급식을 한 진주시 지수초교는 3080원이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은 이날 도교육청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무상급식이 중단된 것에 대해 "교육감으로서 도의적·정치적 책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며 "참담하다. 잠을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석고대죄하고 싶은 심정"이라고도 했다. 그는 또 "(급식비 납입 거부나 도시락 싸 보내기 운동이 계속되면) 당장 다음 주부터 50명 이하 소규모 학교에서는 급식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시락을 싸 오는 학생이 전교생 가운데 절반 이상이 되면. 식재료 납품업체들이 납품을 포기하거나 급식단가가 끼니당 5000원 이상으로 올라 학부모들이 감당하기 힘들어진다는 설명이다.

박 교육감은 "무상급식 중단 문제 해결에 대해 경남도의회의 중재 노력에 기대를 건다"는 말도 했다. 도의회는 현재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박 교육감이 만나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양측을 접촉 중이다. 이와 별도로 박 교육감은 시장·군수들을 직접 만나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경남도의 시·군 역시 올해 무상급식 지원을 끊은 상태다.

무상급식에 대해 경남도 측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무차별적인 무상급식은 빈부 격차를 오히려 심화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별도로 홍준표 경남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빚을 내 빚을 갚는 빈곤의 악순환에 허덕이는 경남도의 많은 부채 여파로 선별급식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유상으로 바뀐 급식비는 오는 10~15일 중 체험활동비나 방과후 수업비 등을 내는 '스쿨 뱅킹' 시스템을 통해 자동이체된다. 학부모들이 급식비 납입을 거부해 이체를 막아놓으면 그에 따른 재정 부담은 도교육청이 지게 된다.

창원=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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