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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 "세탁기 전쟁 끝" … 권오현·구본준 도장 찍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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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삼성과 LG가 모든 법적 분쟁을 끝내기로 한 합의서.

삼성과 LG가 세탁기 사고를 비롯한 모든 법적 분쟁을 끝내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는 “상호 진행 중인 모든 법적 분쟁을 끝내기로 했다”고 31일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과 LG 간 진행 중인 세탁기 재판과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올레드(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 유출 재판 등 총 5건의 법정 분쟁이 사실상 종결 수순에 들어갈 전망이다.

 두 회사는 이례적인 분쟁 종료 공동 발표와 함께 각 사의 대표이사 명의로 직인을 날인한 합의서도 같이 공개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동건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 이름으로 된 합의서엔 “상호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을 모두 끝내기로 하고, 관계당국에 선처를 요청하겠다”는 내용과 “사업 수행 과정에서 갈등 분쟁이 발생할 경우 법적 조치는 지양하고 대화와 협의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겠다”는 부분을 병기했다. 양사 간의 오랜 갈등을 접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합의서에 적힌 법적조치 지양이라는 것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 해석해 달라”고 설명했다.

 삼성과 LG의 경쟁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차녀 이숙희씨가 LG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3남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결혼하면서 연을 만들었지만 사업 경쟁에선 비켜가질 못했다. 국내 최초 라디오(A501·59년)와 최초 흑백TV(66년)를 선보이며 가전시장을 일궈온 LG전자로선 10여 년 늦게 전자업계에 뛰어든 삼성전자에 1위 자리를 내줄 순 없었다. 90년대엔 가전제품 매출 기준 1위와 통신기술(CDMA·부호분할다중접속) 세계 최초 상용화 타이틀을 놓고 기업설명회(IR) 등을 통해 설전을 벌였다.

 양측의 성장 밑거름이 됐던 선의의 경쟁이 ‘법정’으로 가게 된 것은 2000년대부터의 일이다. 특히 신(新)사업 분야에서의 마찰이 잦았다. 당시로선 개화하기 시작한 휴대전화 사업을 놓고 인력 유출 시비가 일어 공정거래위 제소까지 치달았다. 두 회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 가면서 경쟁 분야는 확대됐다. 특히 3D TV 기술 우위 공방을 기점으로 양측 싸움은 전자계열사로 확대됐고,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결국 2012년 이후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 기술 유출로 각각 검찰 고소를 주고받았다.

 싸움이 극으로 치달은 건 지난해 9월의 일이다. 삼성전자는 독일의 한 가전판매점에서 LG전자 조성진 사장이 삼성의 전략 세탁기인 크리스탈 블루 도어를 “고의로 망가뜨렸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조 사장과 LG전자는 맞고소를 했다. 두 그룹이 전례 없는 ‘평화합의서’와 같은 합의문을 만들게 된 데엔 이재용(47)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본무(70) LG그룹 회장, 그리고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합의에 대해 양사 관계자는 “엄중한 국가경제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데 힘을 모으고, 소비자들을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겠다”고 설명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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