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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다시 청청패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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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패션 리더가 되려면 데님, 이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사실 데님(진 소재의 옷)은 어느 시대고 흔하게 입던,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는 새로울 것 없는 옷이다. 그런 데님이 올해는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 거센 봄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문제는 어떤 데님인가다. 장롱 속에 있는 아무 청바지나 꺼내 입는다고 다 ‘트렌디’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1970년대 가수 양희은이나 쎄시봉 통기타 가수들의 데님 패션을 기억하는지. 그들이 입었던 옷이 타임머신을 타고 2015년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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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엔 해외 유명 패션하우스부터 자라·H&M·포에버21 같은 저렴한 패스트패션 브랜드까지 푸릇푸릇한 데님 일색이다.

어느 시즌이고 데님은 나왔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 청바지는 물론이고 셔츠·재킷·오버롤·원피스까지 다양한 데님들이 매장을 가득 채웠다.

좀처럼 데님 소재를 사용하지 않던 패션 디자이너들도 올봄엔 데님에 주목했다. 돌체 앤 가바나는 올해 봄·여름 시즌 패션쇼에 처음으로 데님을 선보였다. 바지 윗부분은 넉넉하고 발목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보이핏(boy fit)’ 스타일에 화려한 구슬과 진주 장식을 단 청바지였다. 알렉산더 왕 또한 올해 처음 세 가지 스타일의 청바지로 구성한 데님 라인을 론칭했다.

2015년 데님 스타일
왼쪽부터 돌체 앤 가바나의 패션쇼에 나온 화려한 장식이 달린 보이핏 바지, 클로에의 맥시 데님 스커트, 지난달 22일 버버리의 데님을 입고 인천공항에 나타난 모델 겸 배우 이수혁, 지난달 17일 발망의 데님을 입고 드라마 `앵그리 맘` 제작 발표회에 참석한 김희선.

디자이너 클로에,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스텔라 매카트니, 질 스튜어트, 레이첼 조 등의 쇼에도 데님은 등장했다. 지난해 봄 시즌엔 단 한 점의 데님 작품도 선보이지 않았던 버버리의 총괄 책임자 크리스토퍼 베일은 올 봄·여름 패션쇼 첫 등장 모델에게 데님 재킷을 입혔다. 연지현 버버리코리아 과장은 “퍼스트 룩(쇼에 첫번째로 등장하는 옷)은 브랜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인데 올해 봄·여름 쇼의 퍼스트 룩은 데님이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데님의 인기가 뜨겁다. 부부 디자이너 스티브 제이와 요니피는 지난해 말 데님 전문 브랜드 ‘SJYP’를 내놨고, 디자이너 박승건은 자신의 브랜드 ‘푸시버튼’에 데님 소재 옷들을 선보였다. 패션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실장은 “올해 유독 데님을 새로 선보이는 브랜드가 많은데 그건 그만큼 찾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리바이스’는 올 3월 50년대 처음 출시했던 바지 ‘501’을 리뉴얼한 ‘501ct’를 내놨다. 높은 인기에 벌써 완판되는 사이즈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클럽 모나코’는 매해 자신들의 옷과 가장 잘 어울리는 브랜드를 선정, ‘서드 파티(third party)’란 이름으로 매장에서 판매하는데 올해는 미국 데님 브랜드 ‘시티즌즈 오브 휴머니티’와 ‘마더’를 선택했다. 이정미 클럽 모나코 마케팅팀 과장은 “올해 트렌드가 데님이다 보니 이를 반영해 두 브랜드가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데님이 유행하는 이유는 뭘까. 트렌드 분석회사 ‘인터패션플래닝’의 글로벌 트렌드 팀 김효정 선임연구원은 “70년대 복고 패션이 올봄 패션 트렌드의 축을 이루고 있다. 또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놈코어’의 인기와도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놈코어란 평범한다는 의미의 노말(normal)‘과 ‘하드코어(hard core)’의 합성어로 평범한 옷을 세련되게 입는 걸 말한다.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설명회마다 입고 나온 청바지와 검정색 폴라 티셔츠가 대표적이다.

놈코어의 대표가 바로 데님이다. 미국 공상과학 소설가 윌리엄 깁슨은 2003년 자신의 소설 『패턴 인식』에서 ‘사립 초등학교에 교복을 납품하는 브랜드의 저렴한 회색 V네크라인 스웨터, 검정 티셔츠, 넉넉한 리바이스 501 블랙 진’이라고 주인공의 옷차림을 묘사하며 놈코어의 개념을 설명했다. 놀라우리만치 지금의 스타일과 맞아 떨어진다. 깁슨이 말한 리바이스 501은 평범한 청바지의 전형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요즘엔 TPO(시간·장소·상황)를 뚜렷이 구분하지 않고 어느 장소에서나 잘 어울리고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한다. 그 중심에 데님이 있다”고 말했다.

1960~70년대 스타들의 데님 스타일
상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청청패션을 선보인 트위스트 김과 신성일, 가수 양희은이 1971년 발매한 `아침이슬` 앨범 재킷, 74년 시작한 TV 시리즈 `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 리 메이저스, 밥 딜런의 63년 앨범 `프리휠링 밥 딜런` 재킷.

데님 중에서도 1970년대 스타일이 인기다. 클로에는 땅에 끌릴 정도로 긴 데님 스커트를 내놨고, 스텔라 매카트니는 가공하지 않은 데님 생지로 만든 점프수트(위아래가 하나로 연결된 옷)와 원피스를 선보였다. 바지 밑단이 넓고 길이가 긴 70년대풍 판탈롱 청바지와 어린 아이들이나 입던 일명 ‘뽀빠이 바지’인 오버롤도 등장했다.

위아래를 모두 데님으로 입는 이른바 ‘청청패션’도 다시 나타났다. 가수 양희은이 1971년 ‘아침이슬’ 앨범 재킷에서 입었던 옷이다. 남성들은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배우 트위스트김이 보여준 청바지와 청재킷 차림으로 거리에 나왔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김영 과장은 “과거 금기시됐던 청청패션이 올봄엔 세련된 패션 스타일링이 됐다”고 전했다.

통이 넉넉하고 길이가 짧은 ‘보이핏’ 바지는 올봄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타일이다. 남자친구의 바지를 입은 것 같다고 해 ‘보이프렌드 진 스타일’로 불리다가 요즘은 보이핏으로 줄여 부른다. 지난달 리바이스가 내놓은 새 브랜드 501ct는 과거 501 브랜드를 보이핏으로 개조한 것이다. 리바이스의 안세희 마케팅팀 팀장은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신이 갖고 있던 옛날 501을 가져와 보이핏으로 수선해달라는 요청이 많았고, 이를 상품화해서 제품을 만들어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청패션과 보이핏 바지는 자칫 촌스러워 보일 수 있다. 청청패션을 연출할 땐 위아래 데님의 컬러를 확실히 다르게 하는 게 요즘 스타일이다. 보이핏 바지의 경우 다리가 짧아보이거나 뚱뚱해보이기 쉽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한혜연 실장은 “넉넉한 사이즈를 입되 발목이 보이도록 밑단을 접고 신발은 운동화나 화려한 색상의 펌프스 힐을 신으라”고 조언했다. 상의로는 면이나 올이 성긴 린넨 소재의 블라우스를 입으면 여성스러운 느낌을 살릴 수 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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