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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참을 수 없는 말과 글의 가벼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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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호 27면

어린 시절 정답게 지낸 친구가 문자를 또 보내왔다. “친구야, 보고 싶구나. 조만간 시간을 내 보러 갈게. ” 그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나 역시 그를 만나 지난 날들과 오늘의 온갖 얘기를 나누며 우리의 애틋한 우정을 더 돈독히 하고 싶으니까.

그가 보고 싶다는 문자를 여러 차례 보내고도 아직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세상살이의 온갖 일과 수많은 인간관계로 꽉 묶여 있을테니 말이다. 전에는 지식과 경력, 그리고 돈이 부족하더니 이제는 시간마저 부족해지고 말았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덕분에 세계의 누구와도 쉽게 관계를 맺을 수 있고 통화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이 기계 덕분에 얼마나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가져다 준 역기능 역시 만만치 않다. 인터넷을 통해 지구촌 어느 곳에 있는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통화하고 광속도로 e-메일을 주고 받으며 온갖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기쁨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는 우리의 인간관계와 업무량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생기기 이전만큼에 머물 때만 유용할 뿐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편리하고 다양한 기능이 더해지기 시작한 이후 우리의 욕구도 그만큼 더 커졌다. 전에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양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그러니 이 편리한 기계를 옆에 둘수록 점점 더 부족해지는 것이 시간이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때로는 잠을 줄여가면서 쉴 새 없이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메일을 주고받지만 대부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 이미 맺고 있는 인간관계도 너무 많고 해야만 하는 일도 너무 많은데, 정해진 시간 속에 인간관계와 할 일은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기계들이 없던 시절에는 오히려 여유를 갖고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친구와 편안하게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전과 같은 여유를 누리며 대화하거나 식사하거나 놀 시간이 없다. 그런 시간을 실제 내기는커녕 만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는 것조차 버겁다. 문자를 읽어보면 진정성이 담긴 문자인지, 아니면 그저 인사치레로 보낸 것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나 역시 부족한 시간 탓을 하며 인사치레에 지나지 않은 문자를 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사치레로 보내온 문자를 진지하게 여겼다가는 보낸 사람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진정성 있는 문자인지, 아니면 인사치레로 보낸 문자인지 잘 분간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의 말과 글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말만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 각종 행사와 모임에서 오가는 말의 무게도 전과 같지 않다. 심지어 진지해야 할 학교의 교육 언어, 종교단체의 신앙 언어조차 점점 무게를 잃어 가고 있다.

말과 글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말과 글로 넘쳐나며 부산해졌다. 한 마디로 인간의 욕망이 너무 커진 것이다. 우리의 말과 글, 움직임이 다시 무게를 갖기 위해선 이 모든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참으로 편리한 도구인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휘둘리는 삶이 되지 않도록 매사에 절제와 균형감각을 갖고 좀 더 현명해져야 할 것이다.



전헌호 서울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석·박사 학위(신학)를 받았다. 현재 인간과 영성연구소 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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