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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나의 안심대출 탈락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20호 31면

안심전환대출 판매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23일. 휴무였던 그날 나는 대출신청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24일부터 판매라고 했지만 사전접수쯤은 받을 거라 생각했고, 필요한 서류가 뭔지도 알아야 했다. 연리 2.65%짜리 대출로 갈아타는 건 아무리 계산해도 유리했다. 아이 둘 키우면서 언제부턴가 포기했던 ‘원금상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자 줄고, 금리변동의 영향을 안 받아도 돼 출시가 예고될 때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자격에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은행 문 여는 오전 9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대출받은 은행 지점에 전화를 했다. 담당자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안내직원에게 두 번이나 이름·전화번호를 말하고 답신 전화를 부탁했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통화가 됐다. “일단 오셔야 한다”고 했다.

부랴부랴 차를 몰고 가 30분을 기다렸다가 상담을 받았다. 그는 “자격엔 문제없을 것 같다. 먼저 대출동의서 쓰시고 내일 아침에 전산망 열리면 바로 작업할 수 있게 소득 증빙서류를 최대한 빨리 보내달라”고 했다. “고맙다”고 하고 일어서려는데 “좋은 적금이 있는데 5만원 짜리로 하나만 들어달라”고 했다. ‘요령있는 친구네’ 하면서 흔쾌히 들어줬다. 적금 가입은 내게 안심대출 성공의 예고편쯤으로 받아들여졌다.

24일 출근하자마자 소득 증빙서류를 떼 은행에 보냈다. 담당자는 “승인 나는 대로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오후 1시쯤 전화가 왔다. “선생님, 대출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아파트 값이 최근 올라 기준(9억원)보다 500만원 넘는 걸로 나오네요.”

“그럴 리가 없다. 어디 기준이냐”고 항의했지만 “KB부동산 기준입니다. 전산입력 자체가 안됩니다”고 하는데 더 따져야 소용이 없었다. 안심대출 기대는 그렇게 사라졌다.

비싼 집에 산다고 자랑하는 거냐, 정말 필요한데도 못 받는 사람이 많은데 배부른 소리하느냐, 하며 비웃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하지만 대출 부담은 집값이 오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나보다 안심대출이 더 필요한 사람에게 갔겠지’란 생각도 안 해본 게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안심대출은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에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적 고려에 의해 나온 상품이다. 그 혜택을 받는 사람은 소수다. 금융상품에 ‘혜택’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쓰이는 것 자체가 이 대출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재원마련이 간단치는 않으나 안심대출 흥행에 성공한 정부는 2차 판매를 준비하는 모양이다.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진 불투명하지만 나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혜택을 받아 안심할 사람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형평성에 시비 걸 여지가 많다. 안심대출 혜택도 못받고, 금리변동에 불안해 하면서 높은 이자에 눌려 사는 사람들이 특히 억울해 할 것이다. 모두들 저마나 ‘나도 혜택 좀 보자’며 목소리 높이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염태정 경제부문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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