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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눈길 잡은 부산경찰, 범인도 착착 잘 잡더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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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호 14면

1 개그우먼 이국주씨가 참여한 불량식품 근절 캠페인 포스터. 2 영화 ‘신세계’와 경찰 캐릭터 포돌이를 패러디한 ‘동네조폭 집중단속’ 포스터. 3 부산경찰 SNS의 재기발랄함을 널리 알렸던 ‘노숙자 슈퍼히어로’ 게시물.
지난해 12월 네티즌들의 제보로 ‘효자 뺑소니 사건’의 범인을 검거한 뒤 부산경찰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좋아요(like)’를 클릭할 때마다 1명의 범죄자를 ‘검거(arrest)’할 수 있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지난해 12월 부산지방경찰청 페이스북에 안타까운 사연이 올라왔다. 정신질환이 있는 홀어머니를 10년 넘게 모시던 30대 남성이 뺑소니 사고로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오토바이로 신문 배달을 하며 생계를 꾸렸던 그는 인적이 드문 새벽에 택시와 충돌한 뒤 다른 택시와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SNS로 소통하는 경찰의 힘

경찰은 인근 차량의 블랙박스와 폐쇄회로TV(CCTV)를 확보했지만 범행 차량을 특정할 수 없었다. 고민에 빠진 경찰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사고 내용을 부산경찰청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시민들의 조회건수가 순식간에 300만 건을 넘었다. 각종 제보도 쏟아졌다. 범인의 차종을 지목하거나 경찰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특징도 올라왔다. ‘효자 뺑소니 사건’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최대 화제가 되자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 범인 한 명이 사흘 만에 자수했다. 네티즌들의 제보에 따라 CCTV를 정밀 분석한 경찰은 다른 범인 한 명도 검거했다.

부산경찰은 SNS 사용자들에게는 ‘스타’다. ‘신들린 드립’(애드리브·ad-lib를 일컫는 인터넷 은어), ‘약 빨고 만든 페이스북’(마약을 한 것처럼 기상천외하고 재밌는 발상을 한다는 뜻) 등 칭찬이 담긴 표현이 수두룩하다. 26일 현재 부산경찰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른 네티즌은 16만5607명, 카카오스토리 친구도 15만 명이 넘는다. 부산경찰이 SNS라는 열린 공간을 통해 시민과 함께하는 새로운 소통의 장을 만든 것이다.

재미있거나 감동적이라는 입소문이 난 게시물의 조회건수는 금세 100만 건을 돌파한다. 공공기관 SNS가 이처럼 인기를 끄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SNS로 범인 잡는 페북(페이스북) 스타, 재미와 공익성의 절묘한 조합을 성공시킨 부산경찰 SNS 운영자들을 중앙SUNDAY가 만났다.

부산지방경찰청 SNS팀 박은정 경장, 정태운 경감(홍보팀장), 장재이 경장(왼쪽부터) 부산=이동현 기자

지난 26일 오후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부산지방경찰청. ‘신들린 드립력(力)’의 주인공 장재이(29·여) 경장이 SNS에 직접 글을 써서 올리고 있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 했던가. 드립엔 드립으로 맞서야 할 것 같아 무작정 질문을 던져 봤다.

-정말 ‘약 빨고’ 게시물을 올리는 것 같다.
“경찰을 뭘로 보나. ‘날라차기 경찰관’ 게시물을 못 봤나(지난 23일 경찰관이 도주하던 마약사범 차량의 창문을 발로 차 깨뜨리는 장면이 담긴 CCTV를 공개해 화제가 됐다). 마약사범은 집중단속 대상이다.”

-부산경찰에는 미남만 있나. 미녀는 왜 안 올리는지.
“한때 유명했던 ‘귀요미송’ 여경을 못 봤나. ‘훈남’(훈훈하게 잘생긴 남자라는 뜻)도 많지만 ‘훈녀’도 많다. (웃으며) 내 주변엔 왜 훈남이 없는지 모르겠다.”

-‘부산사나이 프로젝트’(학교폭력 근절 캠페인) 사용자제작콘텐트(UCC)에 나온 ‘깍두기 머리’ 아저씨는 경찰이 맞나. 겉모습은 조폭 같던데.
“(홍보팀장 정태운 경감이 답변) 내 친구다. 건실한 경찰을 모욕하지 말아 달라.”

지역 특성을 살린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 ‘부산사나이 프로젝트’ 포스터. [사진=부산지방경찰청]

3년 전 네티즌들의 언어로 접근
‘드립력’으론 도저히 상대가 안 됐다. 진지한 취재로 전술을 바꾸기로 했다. 부산지방경찰청 홍보담당관실에서 SNS 홍보를 맡고 있는 이들은 4명. SNS에 글을 쓰고 올리는 장 경장 외에 웹툰을 그리는 박은정(30·여) 경장, UCC 제작을 담당하는 강대민(32) 경사,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맡은 김록수(39) 경사다. 다른 업무를 하는 홍보담당관실 경찰과 ‘젊은 피’ 의경들의 아이디어도 ‘페북 스타’ 부산경찰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부산경찰 SNS가 유명해진 것은 딱딱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공공기관답지 않은 유연함과 기발함 덕분이다. 3년 전 네티즌 사이에서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SNS로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부산경찰 홍보실 직원들은 ‘네티즌의 언어로 접근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장 경장의 전임자였던 권효진(29·여) 경사가 변화를 시도했고, 장 경장이 뒤를 이어 다양한 아이디어를 보탰다.

부산경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노숙자 슈퍼히어로’ 사진, 영화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등의 포스터를 패러디한 범죄 근절 캠페인 게시물 등이 주목을 끌었다. 네티즌들의 은어를 사용한 것도 인기몰이의 비결이다. 경찰에 체포되는 것을 일컫는 ‘철컹철컹’(수갑을 찬다는 의미의 의성어)이란 말을 경찰이 SNS에서 직접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한 네티즌은 많지 않았다.

유명인들과의 컬래버레이션(협업) 게시물도 기발하다. 지난해엔 한 줄짜리 시로 유명한 인터넷 시인 하상욱씨와 함께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을 했다. 하씨는 ‘친구 아이가. 친구 아니다’는 시를 지어 줬다. 친구를 괴롭히는 친구는 친구도 아니라는 의미를 부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 대사로 패러디한 것이다.

옛 남부경찰서 외벽에 설치한 옥외 게시물 ‘총알같이 달려가겠습니다’도 반응이 뜨거웠다. 유명 광고기획자 이제석씨의 재능기부로 만든 이 게시물은 실제 순찰차가 경찰서 외벽을 뚫고 지나가는 모습이 담겼다.

부산경찰 SNS가 비범한 건 단순히 재미만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엔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모정을 담은 게시물이 수많은 네티즌을 울렸다. 남루한 행색에 보따리를 든 할머니가 거리를 헤매다 경찰의 보호를 받게 됐는데, 갓 출산한 딸을 찾아가던 길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수소문 끝에 순찰차로 병원에 데려가자 할머니는 주섬주섬 보따리를 풀어 식어 버린 미역국과 밥을 내놨고, 병실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다는 사연이었다.

감동적 이야기에 시민 신뢰 높아져
장 경장은 “일선 지구대와 경찰서에서 업무 도중 생기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보내 주고 있다”며 “경찰서에선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하면서 경찰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건 간소화된 보고체계 덕분이다. SNS 홍보팀이 내는 아이디어는 대부분 팀 전결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업무시간이 아니어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휴대전화를 통해 게시물을 올린다. 처음엔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재미와 공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이런 우려는 사라졌다.

홍보팀장 정태운 경감은 “‘경찰이 품위 없이 왜 저러느냐’던 중장년층도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부산경찰 SNS가 알려지면서 이해하게 됐다”며 “SNS를 직접 이용하는 젊은 층엔 뉴미디어로, SNS와 가깝지 않은 중장년층엔 기존 미디어로 경찰의 달라진 모습을 알린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효자 뺑소니 사건’ 외에도 부산경찰은 SNS를 통해 여러 사건을 해결했다. 지난해 1월 발생한 강도성폭행 사건은 범인 동료의 제보로 용의자를 붙잡았다. 같은 해 2월 가야동 고부 살인 사건도 애초 용의자로 지목됐던 이가 직접 댓글을 달아 자신이 범인이 아님을 입증하고, 다른 단서를 제공해 사건을 해결했다. 2013년 부산대 성폭행 사건은 2000장이 넘는 공개수배 전단을 돌리고도 범인을 잡지 못하다 SNS에 올린 지 10분 만에 인상착의를 알아본 네티즌이 용의자의 개인 SNS 계정을 제보해 검거할 수 있었다.

부산경찰은 지난해 한국인터넷소통협회(ICOA)가 주관하고 미래창조과학부가 후원하는 ‘2014 대한민국 소셜미디어 대상’에서 공공부문 대상을 받았다. SNS를 활용한 수사와 시민들과의 새로운 소통채널 확대에 대한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부산사나이 프로젝트’로 학교폭력 추방도
부산경찰 SNS팀이 최근 공들이는 분야는 학교폭력이다. 3월 새 학기부터 학교 전담 경찰관들이 학교폭력의 문제점을 알려 주고, 호신술도 가르쳐 주는 ‘부산사나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직 경찰관들이 걸쭉한 부산사투리로 만든 UCC 영상도 화제가 됐다. 영상에선 아이돌 가수 뺨치는 외모의 근육질 경찰관이 “부산 학생들 봐라. 요새 주먹을 함부로 놀리는 아들이 있다카던데, 그라믄 안 되지. 행님이 힘을 우째 쓰야 하는지 제대로 알리줄게. 2015년 3월 말 강당에서 보자”고 말한다. 지난 20일 이 영상이 올라오자 3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다른 지역 여학생들까지 “오빠 보러 부산 가겠다”고 할 정도다.

부산경찰은 “학교 전담 경찰관이 아이언맨이나 뽀로로 복장을 하고 학교를 방문해 관심을 끌었는데, 학교폭력을 근절하려면 학생들의 참여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UCC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재이 경장도 “‘사나이다워야 한다’는 부산 남학생들 특유의 문화가 학교폭력으로 비뚤어져 나타나기도 해 지역 특성을 반영한 UCC가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것 같다”고 했다.

부산경찰의 새로운 시도는 시민들과의 거리도 좁혀가고 있다. 부산역에서 만난 대학생 전경아(21·여)씨는 “부산경찰 SNS를 보면서 경찰이 범죄 예방·수사뿐만 아니라 시민의 고충을 해결하는 역할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이 시민의 눈높이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재미와 공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부산경찰의 시도는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수백만 네티즌이 부산경찰 SNS를 보며 울고 웃는다. 장 경장은 “경찰의 본업은 시민에 대한 봉사란 일념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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