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글로벌 톡톡] 해외서 잘못 알고 있는 시리아 내전의 성격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20호 15면

시리아 내전이 발생한 지 4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 언론들도 시리아 내전에 대한 많은 보도를 쏟아냈다. 내전의 원인에 대해선 수니·시아파 간 갈등,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확장 등 주로 종교적인 측면에서 찾으려는 분석이 많다. 최근 내전에 가세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보는 언론이 적지 않다.

하지만 시리아 출신인 나의 시각과는 사뭇 다르다. 시리아 내전은 독재와 억압에 대한 민중의 항거다. 종교보다 정치적 요인이 배경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시라아에서는 1963년 현 집권세력인 바트당이 주도하는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 바트당 내 한 정파를 이끌었던 하피즈 알아사드가 71년 대통령에 오른 이후 독재정치가 시작됐다. 그는 2000년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비상조치를 통해 시리아인들의 인권을 짓밟았으며 전제군주 같은 폭정을 일삼았다. 이 때문에 시리아는 지하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동의 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그의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집권층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은 알아사드 가문의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시리아 내전이 종교적 이유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사람들은 다양한 이슬람 분파와 기독교파들이 시리아 내에 존재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시리아인의 종교 분포를 보면 이슬람 수니파가 79%,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와 드루즈파가 11%, 나머지는 기독교다. 기독교에는 칼케돈 안티오키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등 다양한 교파가 공존하고 있다. 민족 구성도 다양하다. 아랍인이 90.3%로 다수를 차지한 가운데 아르메니아인·쿠르드인·튀르크인 등이 살고 있다.

바트당의 쿠데타 전까지 수백 년 동안 종교와 민족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갈등과 마찰은 없었다. 수많은 작은 조각들을 모아 만든 아름다운 모자이크 작품이라고 부를 만큼 조화를 이뤄 살고 있었다. 이는 시리아인들이 종교와 민족에 대해 상당히 관대했기에 가능했다. 시리아인들은 지금도 종교와 민족에 관한 질문을 금기시하고 있다.

시리아 혼란의 또 다른 원인은 이란에서 찾을 수 있다. 이란 정부는 현재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군을 위한 군사고문단과 민병대를 보내 현 정권을 보호하고 있다. 알아사드 정권이 집권 이후 이란과 강력한 동맹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이란 정부는 바그다드를 수도로 한 페르시아 제국 재건을 추진하고 있다. 중동의 일부 국가는 이란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리아 내전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각국의 지원을 받는 무장세력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시리아 땅에서 싸우고 있는 형국이다. IS가 시리아에 자리 잡은 이후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IS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종하지 않는 세력에 대해 잔혹한 박해를 가하고 있다. IS도 종교를 앞세워 정치세력으로서의 성장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리아 내전은 종교적 갈등으로 포장돼 있지만 결국은 정치세력 간의 다툼이라는 것이 대다수 시리아인의 생각이다.

압둘와합 알무함마드 아가 동국대 법학대학원 박사과정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