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의 가치 가르치는 정책대학원 … 졸업자 25%가 중국 국적 유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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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동서 냉전이 끝난 후 세계에는 ‘미국식 민주주의 절대 우위’라는 하나의 조류가 생겼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조합은 번영의 해법이 됐다. 일당 지배를 유지하려는 아시아 신흥국은 ‘예외’라 할 수 있는 리콴유(李光耀)의 싱가포르 모델에서 존립 근거를 찾았다. 리 전 총리가 창설한 인민행동당(PAP)은 50년에 걸쳐 정권을 잡았다. 언론자유 등을 제한하고 국가의 생존을 최우선시하는 ‘아시아형 민주주의’로 불린다. 인권문제로 비판도 받았지만 기적적 번영을 이뤘다.

 1978년 11월 당시 중국 부총리 덩샤오핑(鄧小平)이 싱가포르 서부공단을 찾았다. 세금 우대와 규제 간소화로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공장을 짓고 이익을 얻는 걸 봤다. 덩은 다음 달 개혁·개방을 내걸고 당의 주도권을 잡았다. 싱가포르 국립대 ‘리콴유 공공정책대학원’은 ‘아시아형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기관이다. 졸업생 약 2000명 중 중국인 유학생은 4분의 1에 달한다. 중국은 지금도 싱가포르를 성장의 모범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일당 지배 체제하의 성장은 보편성을 가질까.

 리콴유는 중국이나 베트남과 달리 성장을 위해 일당 지배를 통한 정치적 안정을 택했다. 반면 모방국들은 체제 연장을 위해 성장이 필요하다. 목적과 수단을 바꿨다. 그는 정치 투명성을 강조했다. 비리 혐의를 받은 관리는 추방했다. 많은 아시아 신흥국에선 뇌물이 판친다. 경제 개방성도 크게 다르다. 싱가포르에선 2000년대에 저가 항공사(LCC) 진출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컸다. 리콴유는 “싱가포르항공 점유율을 잠식해도 상관없다”고 일축했다. 미·일·중은 물론 신흥국과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은 자국 산업 보호에 집착해 수준 높은 통상 자유화에 나서지 못한다.

 신흥국에서 리콴유가 주창한 아시아형 민주주의는 일그러진 형태로 왜곡됐다. 이들 국가에서 수단일 뿐인 일당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성장이 비틀거리며 불만의 마그마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원문은 중앙일보와 전재 계약한 니혼게이자이신문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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