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유지·보수는 30년 먹거리 … 한국 조선업계 신경 안 써"

중앙일보

입력 2015.03.26 00:02

업데이트 2015.03.2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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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로이드 레지스터의 리차드 새들러 최고경영자(CEO)가 ‘월드 쉬핑 서밋(World Shipping Summit)’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2007년 CEO에 올랐다. [블룸버그]

“한국 조선사들의 배 만드는 기술은 세계 최고다. 하지만 만드는 데에만 집중할 뿐 유지·보수 시장인 애프터 마켓(after market)은 등한시하고 있다.”

 실적 부진에 빠진 한국 조선업체들이 들으면 “아차” 할 이 말, 최근 방한한 로이드 레지스터의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리차드 새들러가 했다. 1760년 영국에서 설립된 로이드 레지스터는 선박·해운·에너지·품질보증·철도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위험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지난해 매출은 10억3000만 파운드(한화 1조6831억원)으로 한국을 비롯한 78개국에 진출해 있다. 한국 정부도 원자력 안전 등과 관련해 로이드 레지스터의 자문을 받고 있다.

 새들러 CEO가 한국 조선업체에 훈수를 둔 데엔 이유가 있다. 로이드 레지스터가 선박의 안전을 평가하는 선급회사로 사업을 시작한 만큼 조선업체 대한 이해가 남다른 까닭이다.

 새들러는 “보통 배의 수명은 20~25년인데 한국 조선업체들은 평균 3년 정도인 보증기간의 수리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아무리 불경기라도 선박 유지·보수를 위한 최소한의 투자는 해야 하는 만큼 이 시장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며 “애프터 마켓을 제대로만 키워낸다면 한국 조선업체들은 앞으로 30년간 먹거리 걱정은 덜해도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들러는 애프터 시장 활성화와 관련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했다. 대표적인 게 빅데이터를 활용한 부품 관리 시스템 구축이다. 특정 부품이 수명을 다할 때쯤 이를 자동으로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선박 부품마다 마모도를 비롯한 수명이 다르기 때문에 부품과 관련한 빅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구축해 관리하면 자연스레 추가 수입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새들러는 “한국 조선소들이 선박 디자인에서부터 유지 및 보수까지 전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데이터화해 관리하면 선박수주 경쟁력 자체를 높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선업계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자동차 업계를 꼽았다. 자동차 업체들은 소모성 부품마다 위성항법장치(GPS) 태그 등을 붙여놓고 부품별 수명에 맞춰 선제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사실 한국 조선업체들도 애프터 마켓을 일으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태동기에 그친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현대중공업은 KT와 손잡고 선박원격 유지보스 시스템인 ‘스마트쉽’ 개발에 착수했다.

 새들러 CEO는 “빅데이터는 선박 안전에도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배의 운항 속도나 배의 무게, 주변 날씨 등 선박 외부 변수와 관련한 충분한 정보가 축적되고 이를 잘 분석할 수만 있다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점에서 지난해 한국의 세월호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인재”라고 말했다.

 빅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로이드 레지스터 역시 앞으로 5년 간 관련 분야 연구에만 1500만 달러(165억원)을 추가로 투자하기로 했다. 새들러는 “빅데이터를 통해 구축한 각종 정보가 산업 및 기술적 공간 뿐 아니라 조직체계 및 사회 전체 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한국 조선업체들도 암묵지 형태로 전달되고 있는 빅데이터를 좀 더 체계적이고 이용 가능한 형태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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