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문 기자
“지역 이미지가 훼손된다고 주민들이 반발할 수도 있고….”
이틀 전 본지에 전국 251개 시·군·구별 성범죄 위험도 지도가 실렸다. <3월 23일자 1·8면> 보도에 앞서 성범죄 위험도를 분석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자료를 확보한 뒤 현장 취재를 할 때였다. 위험도 지수가 상위권인 수원의 지방의원을 만나 대책을 물었다. 의원은 “사실 우리 지역에서 각종 범죄가 일어나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범죄 데이터가 제시된다면 구체적인 대안을 만드는 데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시·군·구별 통계까지 공개하는 건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라며 난색을 나타냈다. 경찰의 반응도 비슷했다. “우리야 공개하고 싶죠. 하지만 지역에서 난리가 날 겁니다.”
다닥다닥 붙은 주택들, 그 사이로 구불구불 미로와 다름없는 골목길, 페인트가 벗겨진 채 금이 간 회색 담벼락…. 기자가 찾아간 수원 팔달구 A동은 이 지역이 왜 성범죄에 취약한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김기정 수원시의회 도시환경위원장은 “지역에 CCTV를 확대 설치하는 등 안전 대책을 세우려 해도 예산 때문에 뒤로 밀리곤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성범죄 위험을 가린 채 방치하는 게 옳은 것일까. 선진국들은 범죄 관련 데이터를 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미국의 ‘크라임 매핑(Crime Mapping·범죄 지도)’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클릭 몇 번만 하면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범죄 종류와 발생 위치는 물론 수사 상황까지 확인할 수 있다. 영국도 경찰이 운영하는 사이트 ‘Police UK’를 통해 16개 범죄 유형별로 시기별 발생 건수와 사건이 발생한 정확한 지점까지 알려준다.
박준휘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범죄 통계를 본 주민들은 보지 않은 주민보다 ‘범죄 예방을 위해 세금을 더 낼 의사가 있다’고 답한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성범죄 위험을 낮추려면 예산에 앞서 지역 주민들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게 중요합니다. 주민들이 관계 기관에 대책 마련을 압박해야 해요.”
지난해 부산은 강력범죄가 꼬리를 문 16개 지역에 ‘어머니폴리스단’을 발족시켰다. 주기적인 순찰과 함께 통·반장 집을 ‘아동안전 지킴이집’으로 지정한 결과 1년 만에 성범죄 건수가 17.7% 줄었다.
이혜련 수원시의원은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중앙일보 기사를 보고 다른 의원들과 모여 지역 치안 대책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그는 “팔달구만 전담하는 경찰서 신설을 촉구하는 등 범죄를 줄일 수 있는 대안들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정보 공유가 문제 해결의 시작이란 것은 범죄 대응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유성운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