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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못 간 길, LPGA 6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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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신인 김효주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23일(한국 시간) 끝난 JTBC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했다. 우승상금은 22만5000달러(약 2억5100만원). 김효주는 이날 우승으로 세계 랭킹 8위에서 4위로 올라섰다. [사진 LPGA]

미국 최고의 여자 골퍼인 스테이시 루이스(30·세계랭킹 3위)에게 한국 선수들은 ‘통곡의 벽’이다. 척추측만증으로 척추에 철심을 박은 몸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루이스도 한국 선수들을 만나면 작아진다.

 23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와일드 파이어 골프장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JTBC 파운더스컵. 루이스는 21언더파를 친 김효주(20·롯데)에게 우승컵을 내주고 2위(18언더파)로 경기를 마쳤다. 후반 루이스는 버디 4개를 잡아냈지만 김효주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루이스는 2주 전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는 박인비(27·KB금융)에게 져 2위를 했고, 이달 초 혼다 타일랜드에서는 양희영(26)에게 밀려 3위에 머물렀다.

 한국 여자골프는 2015년 전 세계 투어를 점령하고 있다. 올 시즌 6개 LPGA 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5승을 했고 한국계 리디아 고(18·뉴질랜드)가 1승을 챙겼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 출신 선수(Korean born player)의 개막 6연승이다. LPGA가 미국 외 국가에 문호를 연 이후 처음 있는 ‘독식’이다. 유럽 여자투어 4개 대회에서도 유소연(25·하나금융)을 비롯한 한국(계) 선수가 모두 우승했다.

 “한국 선수들이 왜 이렇게 강하냐”는 질문을 또 들어야 했던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LPGA 투어의 침체로 국내에 있던 황금세대가 올해 동시에 건너가 박인비·최나연(28·SK텔레콤) 등 언니들과 합류했다. 박인비는 골프가 공을 멀리 치는 게임이 아니라 멘털 게임인 것을 확인시켰고, 한국 선수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김세영(22·미래에셋)·장하나(23·BC카드) 등은 거리에서 서양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배운 한국 여자 선수들의 스윙은 완벽하다. 일찌감치 에티켓과 언어까지 준비한다. 한국 선수들은 이제 여자 프로골프의 표준이 됐다.”

 한국 선수들이 선전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의 경제 성장이다. 1998년 박세리(38)가 US오픈에서 맨발의 투혼으로 우승할 때 한국은 외환위기 와중이었다. 이후 상금이 큰 LPGA 투어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은 투어 인기를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한국 부모들은 “다른 일 생각하지 말고 공이나 쳐”라고 가르쳤다. 일부 선수는 인터뷰도 대충 하고, 에티켓에 문제도 있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고 돈만 벌어가는 선수라는 따돌림을 받았다.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한국 기업은 JTBC 파운더스컵을 비롯해 KIA 클래식, 롯데 챔피언십, 하나-외환 챔피언십의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있다. 한국 기업 모자를 쓴 선수도 많다.

 이일희(27·볼빅)의 말에 힘이 실려 있다. “예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한국 선수들은 LPGA 투어의 당당한 주인이고 주주다.”

피닉스=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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