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이창호의 火기운 이세돌에겐 보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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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9단은 강을 곁에 둔 비옥하고 너른 땅이다.서봉수9단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이고 이창호9단은 7월의 강렬한 태양이다.

조9단은 토(土)의 기운을 바탕으로 수(水)가 풍부하고 서9단은 수(水)가 세번 겹치며,이9단은 화(火)의 정화와 같은 사람인데 이들의 상생상극이 한국바둑을 최고의 경지로 이끌어 올렸음을 지난번 밝힌바 있다.

그렇다면 한국바둑의 ‘5강’중 유창혁9단과 이세돌7단은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명리학자 청담(淸潭)선생과 ‘사주명리학 이야기’의 저자인 조용헌 원광대 교수(불교학 박사)의 풀이를 정리해봤다.

유창혁9단은 꼿꼿하고 큰 나무다. 목(木)의 기운을 타고난 유9단은 한분야의 '두목'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췄다. 보스 기질에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며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나무이면서 불(火)의 기운도 갖고 있다. 자기 표현이나 감정표현에 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유9단의 목(木)은 이창호의 화(火)에 대적하기 어렵지만 조9단의 토(土)를 극(剋)한다. 유9단이 이9단에겐 약하고 조9단에겐 강하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나무에서 불이 솟듯이(木生火) 유9단은 이창호의 바둑이 완성되어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세돌7단은 정원의 흙이다. 같은 토(土)라도 들판의 흙인 조훈현9단이 변화무쌍하고 동분서주하는 데 비해 이7단은 한결 덜 수고롭고 변화도 적다. 그의 승운은 근 18년 뒤인 38세까지 이어진다.

이세돌7단은 의외로 세밀한 성격이다. 이세돌의 정원에는 나무(木)가 울창한데 이 대목이 한국 바둑의 미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원의 나무는 보기좋고 잘 어울린다.

그러나 나무(木)는 흙(土)을 이긴다. 즉 이세돌이 타고난 토(土)의 기운을 목(木)이 침범한다. 이7단은 스스로를 들볶을 수 있는 소지가 있고 그래서 건강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이세돌7단 최대의 적은 '자기 자신'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이세돌은 또한 목(木)기운이 강한 유9단과 천적일 수 있다. 유9단이 조금 늦게 태어났다면 가장 피곤한 적수가 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세돌7단의 진정한 행운은 이창호9단이란 존재가 바로 곁에 있고 그와 더불어 앞으로도 계속 승부를 겨뤄나가야 한다는 데 있다. 이창호의 불(火)은 이7단에겐 그대로 보약이 된다. 그 불이 이세돌의 나무(木)를 태워 이세돌의 토(土)를 건강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즉 이세돌은 이창호의 모든 것을 흡수하면 할수록 더욱 강하고 편안해진다. 이세돌에게 이창호는 반드시 꺾어야 할 대상이면서 자신을 도와주는 상생의 존재라는 점은 복잡미묘하고도 의미심장하다.

전체적으로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로 흐르는 상생의 흐름 속에 유창혁(木)-이창호(火)-이세돌(土)이 존재한다. 한국 바둑의 순조로운 운세를 이로써 예견할 수 있고 그 핵심에 뜨겁고 밝은 불의 기운을 지닌 이창호 9단이 우뚝 서있음을 볼 수있다.

이9단은 재물이 풍부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물(水)의 기운이 약하다는 점이다. 돈을 쓰거나 재미있게 놀지는 못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타고난 운세란 어디까지나 초석에 불과하고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것. 진정한 변화는 저 높은 구름 속에 존재할 뿐 그 천기를 다 밝힐 수는 없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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