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보다 더 심각한 ‘국포자’ 없애는 앱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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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기획이 18일 출시한 탈북 청소년용 모바일 단어장 ‘글동무’의 시연 장면. 교과서 위에 스마트폰을 올리면 단어의 풀이와 예문, 북한식 표기 등이 나타난다. 수록된 3800개 단어는 탈북 대학생 10명이 직접 골랐다. [사진 제일기획]

“국어책에서 반은 모르는 단어였다.”

올해 초 제일기획 굿컴퍼니솔루션센터(GCSC)와 만난 탈북 고교생 김은철(18·가명)군의 푸념이다. 은철이는 북한에서 순한글로 된 단어만 접하다가 한자와 외래어로 가득한 ‘남한어 교과서’를 접하면서 좌절했다. 김군은 “교과서뿐 아니라 신문·표지판 등에 모르는 단어가 가득했다”며 “그 때마다 친구들이나 행인에게 물어보기가 난감했다”고 말했다.

제일기획이 18일 출시한 탈북 청소년용 단어장 ‘글동무’를 출시하게 된 배경이다. 글동무는 ‘같은 곳에서 함께 공부한 동무’라는 뜻으로, 같은 교과서로 공부하는 청소년들이 정작 소통할 수 없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미를 담았다.

올해 초 설립된 GCSC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공유가치(CSV) 활동을 컨설팅해주는 사내 연구소다. 설립 직후 아이디어 회의에서 한 직원이 “교육 봉사활동을 나갔는데 탈북 고교생들이 교과서를 못 읽었다”는 말을 했고, 이에 충격을 받은 제일기획 직원들이 이를 검증하다가 프로젝트가 생겨났다.

최재영 센터장은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지만, 탈북 학생들이 교과서 한 페이지의 단어를 몽땅 북한 단어로 바꾼 페이지를 읽어보니 나 역시 문맹이 됐었다”고 말했다. 제일기획 직원들과 만난 일부 탈북 고교생들은 “단어가 어려워 국어를 포기하는 친구들도 많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앱은 교과서에서 모르는 단어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그 즉시 단어의 뜻과 예문, 북한어 표현이 화면에 표시해 준다. 개발은 제일기획 직원 100명과 대학생 20명, 탈북 의사·교사 등 140명이 맡았다. 이 중에는 탈북 후 남한에서 고교를 거친 대학생 10명도 포함됐다. 이들 10명은 고교 교과과정에서 모르는 단어들을 ‘족보’ 형식으로 정리해 앱에 수록하는 일을 주도했다.

현재 글동무 앱에는 고교 국어교과서에서 고른 단어 3800개가 실렸으며, 올해 중 과학·사회·수학 교과서의 단어들과 신문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들이 추가될 예정이다. 최 센터장은 “단어장 데이터베이스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한편, 통일이 되면 남한 출신을 위한 ‘북한어 사전’으로도 활용할 방침”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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