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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부작용 많은 인터넷 개인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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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직장인 김영래(31)씨는 퇴근 후 TV 대신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개인방송을 시청한다. 게임을 좋아하지만 입사해 보니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게임을 하는 대신 게임방송을 보며 대리만족한다. 방송 진행자인 BJ(Broadcasting Jockey)는 화려한 게임 실력과 입담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김씨는 “직접 게임을 할 때처럼 긴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돼서 좋고, 게임을 하는 BJ들의 모습이 게임보다 더 재밌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이대솔(27)씨는 혼자 공부하다 집중이 잘 안 되면 휴대전화로 ‘공방(공부방송)’을 틀어 놓는다. ‘공부(08:00 am~) D-171’이라는 방송에 접속하니 화면엔 탁상시계와 책, 필기도구가 있는 책상이 보인다. 움직이는 건 문제집을 푸는 BJ의 손과 ‘공무원 준비 81일차/7시49분 출석’이라는 글자뿐이다. 이씨는 “공부방송 BJ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만 보여 준다”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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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개인방송은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2006년 서비스를 시작한 개인방송 사이트 ‘아프리카TV’는 꼭 10년 만에 회원 수 1200만 명을 넘어섰고, 매일 350만여 명이 사이트에 접속한다. 아프리카TV 측은 “시청자가 가장 많은 오후 8시부터 밤 12시 사이에는 6500여 개의 방송이 개설되고 38만여 명이 동시에 방송을 시청한다”고 밝혔다.

 인터넷 개인방송의 가장 큰 무기는 다양성이다. 모든 일상이 방송 주제가 된다. 밥을 먹는 것도,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것도, 심지어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도 방송 소재가 된다. 가장 많은 건 전체 방송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겜방(게임방송)’이지만 음악을 틀어 주고 수다를 떠는 ‘음방(음악방송)’, 스포츠중계방송, 시사방송, 요리방송, 주식방송 등도 인기고 ‘먹방(먹는 방송)’과 같은 새로운 문화도 탄생했다.

 최근엔 변호사가 출연해 법률 상담도 해 주고 생활법률 지식을 알려 주는 ‘법방’, 영어나 공부법 등을 가르쳐 주는 강의방송도 등장했다.

 덕분에 방송을 하는 BJ 수도 20만 명을 넘어섰다. 인기 BJ들은 수입이 수억원에 달해 경쟁도 치열하다. 시청자들은 방송이나 BJ가 마음에 들면 한 개 100원인 ‘별풍선’이라는 아이템을 선물한다. 아프리카TV는 이 별풍선 판매수익의 30~40%를 수수료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BJ들이 가져가는 구조다. 지난해 10월에는 한 시청자가 BJ에게 한 번에 35만 개의 별풍선을 선물해 ‘별풍선 선물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35만 개는 현금으로 환산하면 3500만원으로, 해당 BJ는 수수료를 제외하고 한 번에 2000여만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2013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김을동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인기 BJ들은 연간 평균 2억원이 넘는 소득을 올렸다.

 그러나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부작용도 함께 커졌다. 인터넷 개인방송 시대의 그림자다. 특히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송이 문제가 됐다. 선정적인 방송은 ‘벗방(벗는 방송)’으로 불린다. 초기에 아프리카TV에서 주로 활동하던 ‘벗방’ BJ들은 사이트 규모가 커지며 자체 규제가 심해지자 규제가 허술한 중소 인터넷 개인방송 사이트로 옮겨가 더 심한 ‘벗방’을 진행했다. 단순한 별풍선 요구를 넘어 등급제로 운영되는 일명 ‘팬방’ 시스템도 만들었다. ‘실버방’ ‘골드방’ 등 팬방 등급이 올라갈수록 노출 수위가 강해지는 식이다. 시청자들은 등급에 따라 몇천원부터 10만원이 넘는 고액의 선물을 BJ에게 줘야 팬방에 가입할 수 있다. 벗방 BJ들은 “실버방에선 가슴, 골드방에선 알몸을 볼 수 있고 다이아방에선 신음소리까지 들려준다”는 식으로 광고한다.

 몰카방송과 같은 불법 방송도 등장했다. 일부 BJ는 공공장소에서 몰래 여성을 촬영해 실시간으로 몰카방송을 내보내고, 룸살롱이나 성매매업소에서 휴대전화로 방송을 하고, 성매매 과정을 실시간으로 방송하기도 한다. 실제 한 개인방송 사이트에는 낮 시간에도 “다방 아가씨 불러 놨다” 등의 제목으로 선정적 방송들이 개설됐다.

 BJ는 “선물을 많이 주면 다방 아가씨와 성관계하는 걸 몰래 중계하겠다”며 노골적으로 홍보했다.

 ‘벗방’ 외에 엽기방송도 여럿이다. 한 인기 BJ는 퍼포먼스라며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죄자 김길태의 모습을 흉내 내 논란이 됐다. 요구르트 50개를 먹고 구토를 하는 혐오스러운 모습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2013년엔 BJ가 음식을 배달시킨 뒤 나이 많은 여성 종업원에게 욕설을 퍼붓고 성적으로 희롱하는 모습을 그대로 방송했다.

 그러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관리 주체들은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반응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심각성은 알지만 게시글이나 일반 동영상과 달리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곧장 휘발되는 콘텐트라 사실상 손쓸 방법이 없고, 24시간 모든 방송을 모니터링할 수도 없다”고 답했다. 경찰 역시 손쓰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경찰서 사이버팀장은 “신고가 들어오면 수사할 수 있지만 실시간 방송이라 범죄행위를 특정하기 어렵고 몰카의 경우 피해사실 자체를 알기 어려워 처벌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문신일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는 “기술적으로 막거나 법적 규제를 강화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신 이용자들의 인식이 바뀌고 올바른 규범이 형성돼야 한다”며 “실효성 있는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인터넷방송이 정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S BOX] 아프리카TV는 50명이 모니터링 … 중소 업체로 옮겨가 ‘풍선효과’

아프리카TV는 선정적·자극적 방송을 막기 위해 자체 모니터링 요원을 두고 있다.

 총 50명의 모니터링 요원이 주간·야간·새벽 3교대로 근무하며 24시간 실시간으로 방송을 모니터링한다. 문제가 있는 방송에 대해선 경고나 일정 기간 방송을 금지시키는 제재를 가하고, 해당 BJ와 직접 상담도 한다. 또 실시간 신고·보상제도 운영하고 있다.

 주요 규제 항목은 음란·성인 방송, 청소년 유해 방송, 저작권 침해 방송, 부적절한 방송 제목, 미풍양속 위배 방송, 불법 사이트 홍보 방송, 게임 프리서버(불법 서버) 방송 등이다. 아프리카TV 측은 “개인방송의 특성상 창작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게 기본이지만, 문제가 있는 방송에 대해선 공중파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규제 덕분에 아프리카TV에선 노골적인 성인방송이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중소 개인방송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그리로 이사 갔다. 일종의 ‘풍선효과’인 셈이다. 여기선 수위를 넘는 선정적인 방송이 공공연하게 전파를 탄다. 아프리카TV 측은 “매력적인 사업이라 비슷한 플랫폼 사업자가 생겨나는 건 당연하지만, 대부분이 선정적인 방송으로 수익을 내며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고질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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