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드 한국 배치 불지피기 나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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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미연합사령부가 12일 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염두에 두고 부지 조사를 마쳤다는 사실을 공개한 건 그동안 한국과 미국 정부가 취해온 ‘전략적 모호성’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이제 문제를 물위로 드러내 사드 문제를 공론화하겠다는 뜻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사드 논란은 지난해 5월 말 월스트리트저널이 “미 군 당국이 한국에서 사드 배치를 위한 적당한 장소를 찾기 위해 부지 조사를 실시했다”는 보도에서 시작됐다.

 며칠 뒤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은 “사드가 한국에 필요하다. 본국에 배치를 요청했다”고 밝히면서 사드 논란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치고 빠지고를 반복했다. 지난달엔 제프 폴 미 국방부 공보 담당관이 “이미 한국 내에서 (사드 배치와 관련한) 부지 조사를 마친 만큼 사드 문제를 한국과 비공식적으로 논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옳지 않다”고 했다가 방한 중이던 데이비드 헬비 미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논의한 바 없다”고 진화에 나선 적도 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NCND전략에서 부지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힌 건 한국 내 분위기를 업고 사드 배치의 불지피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당에선 “3월 말 사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정책의원총회를 소집하겠다”(유승민 원내대표)거나 “한국 방어를 위해선 적어도 3개의 사드 포대가 필요하다”(원유철 정책위의장)는 말이 나오고 있다. 본지가 2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55.8%에 달했다.

 그동안 사드 배치의 분위기가 조성되길 기다리던 미국이 이제 사드 문제를 물위로 끄집어 올려 드라이브를 걸 시점이라고 판단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3NO’가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는 청와대의 언급 다음 날 연합사가 입장을 낸 것도 주목된다. ‘3NO’는 사드와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요청을 받지도(No Request), 협의한 적도(No Consultation), 아무것도 결정된 것도 없다(No Decision)”는 뜻이다. 청와대가 선 긋기에 나서자 한국을 압박하려는 차원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음달 잇따라 방한 예정인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이 사드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지 정부는 주목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닥쳐올 파장이다. 당장 국내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쪽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관계자는 “ 미국이 본격적으로 사드 배치를 추진한다면 어떤 게 국익에 맞는 건지, 사드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는지 정확히 따져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대 디펜스 21플러스 편집장은 “현재 미국이 운영 중인 사드는 괌과 텍사스 등 3개 포대뿐인데 당장 한국에 가져올 수 있는 게 없다”며 “결국 미국 국방부가 추가로 사드를 구매해 몇 년 뒤에나 한국에 배치하겠다는 뜻인데, 국방비를 삭감한 미국이 우리 정부에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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