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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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크렘린 최고 권력자의 사망 발표엔 늘 음침한 구석이 있다.
우선 사망이 즉각 발표되지 않고 상당한 준비과정을 거친 끝에 나온다.
그 점에선「안드로포프」나 바로 전에 죽은「브레즈네프」나 다를 것이 없다.
소련의 텔리비전과 라디오방송은 10일 하오2시24분(현지시간)엄숙한 음악방송을 중단하고 「안드로포프」의 사망을 보도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소련 TV아나운서실장「이고르·키릴로프」가「소련공산당중앙위와 최고회의 및 정부」의「안드로포프」사망 발표 성명을 읽었다.
그것은「브레즈네프」때도 마찬가지였다. 1982년11월11일 상오11시 역시 상복을 입은 「키릴로프」가 사망을 보도했다.
약간 희화적이기도 한 이들 사망 발표 사이엔 그러나 차이가 있다.
사망에서 발표사이의 시간이 조금 짧아졌다는 사실이다.「안드로포프」의 실제 사망시간은 현지시간 9일 하오4시50분. 그러니까 사망발표는 21시간34분이 걸린 끝에 나왔다.
「브레즈네프」의 사망 발표는 무려 26시간30분이 걸렸다.
1953년「스탈린」의 사망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스탈린」은 뇌일혈로 쓰러져 4일간 사경을 헤매다 3월5일 밤9시50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이 공식 발표된 것은 이튿날 새벽4시.
사망에서 발표까지는 6시간10분이 걸렸다. 그러나 사경을 헤맨 4일간마저도 측근을 제외하곤 아무도 낌새조차 채지 못했다.
사망 발표시간이 지연되는 것은 미묘한 크렘린 권력체제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권력체제의 안정도를 그 시간의 길이에서 재는 사람도 있다.
사망발표가 있기까지 후계자는 벌써 암묵리에 결정된다는 관측도 있다.
사망 원인에 대한 억측은 계속 남는다.「스탈린」은 공식적으로 뇌일혈로 죽었다고 발표됐다. 하지만 소련 작가「일랴·에렌부르그」는 최고회의 간부들의 항거에 분사했다고 설명했다. 가족들은 독살이라고 했다.「브레즈네프」의 죽음은 탈권공작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붉은 광장』의 저자「토폴리」와「네즈난스키」의 설명이다.「안드로포프」는 벌써 작년 8월 이후 공식석상에 나오지 않았었다.
이제 크렘린의 드라머는 다시 시작될 모양이다. 음모와 계략과 비밀의 장막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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