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과 지방자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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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양사 중심의 세계사에는 정통하나 근대의 한 지방사인 한국사에는 소홀하거나, 혹은 세계사와 한국사간의 상호 관련성은 그런대로 포착하지만 한국사속의 개별지방사는 전혀 무시되고 있다는 자성의 소리가 들린다. 이런 사정은 중국을 세계로 보고 조선은 주변이며, 서울의 역사가 한국사요 지방의 역사는 전통적 역사인식과 그궤를 같이 한다. 강자의 역사, 중심의 역사만이 전부라는 이러한 사고는 타자지향의 전근대가 빚은 결과가 아닐수 없다.
특히 한국정치사의 서술을 대할때 느끼는 자괴감은 더욱 큰 것이다.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근대사회의 자본주의적 외피를 갖추었으나 자치와 독립이라는 정치적 요건은 내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래서 강대국 중심의 정치사가 세계정치사요, 서울정치사가 한국정치사라는 등식은 불변이며 한국정치사는 강대국 정치사의 종이요 지방정치사는 그존재 근거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정치사에서 근대가 가지는 특질의 하나로 중심과 주변간의 관계가 다양해지며 특히 주변의 중심에대한 대응이 보다 주도적이며 강력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정치과정을 들수있다. 이러한 사정을 인정한다면, 한국의 근대정치사는 우리 자신이 주변이라는 분명한 현실인식에서 출발해야한다. 주변이면서 중심으로 착각하거나 거기에 빌붙는 일보다는 주변을 인정함으로써만이 탈주변과 중심으로의 진입이 가능할것이니까.
「선진조국의 창조」라는 신념에서 그 선진이 자칫 우리의 현실인식을 생략한채 중심으로의 무리한 모방이될까 저어된다. 진정한 능률과 실질의 숭상이 뿌리내리기 의해서도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서도 먼저 자치의 장이 열리고 자기신원의 확인절차가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나라의 자주는 지방자치의 바탕에서, 지역사회의 성립은 개개 시민의 자주의식을 요소로 하는 것이라면, 지방자치는 나라와 시민을 선진화시키는 고리부분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에 대한 원천일뿐 아니라 교실이라는 말이 있다. 선진조국의 창조를 위해 정치지도자든 시민이든 이 자치의교실에서 동문수학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향후 한국정치사가 지방자치의 개시기를 시대 구분의 신기원으로 기술하게되고, 각지의 지방사가 전체 한국사와의 맥락에서 뚜렷이 쓰여졌으면하는 바람이 60갑자 원년에 더욱 크다. 나라를 잘 가꾸려면 집안도 그러하지만 지방도 잘 가꾸어야한다.
한석태<경남대·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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