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해준 백지 가계수표 은행에 지급할 책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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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가계수표를 발행하기 위한 가계종합예금약정에 발행일을 기재하지 않은 백지수표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없더라도 백지발행 된 가계수표를 할인, 취득한 경우 은행측에 지급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같은 판결은 가계수표가 일상 가계자금을 현금 대신 이용할 수 있는 지급수단으로 마련된 제도지만 영세업자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사채시장에서 3∼3·5%의 선이자를 떼고 할인해 쓰고있는 변칙거래현실을 인정해준 것으로 주목되고있다.
서울민사지법합의7부(재판장 최종백부장판사)는 27일 조시환씨(서울화곡동29의196)가 제일은행을 상대로 낸 수표금청구소송에서 이 같이 밝히고 『피고은행은 원고 조씨에게 2천3백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원고 조씨는 82년 4윌부터 같은 해 6월까지 강현진씨 등 4명으로부터 액면 10만원 짜리 (발행지와 지급지는 서울시, 지급인 제일은행동대문지점)의 가계수표를 발행일자 기재 없이 2백30장을 받아 가계수표 보증카드의 기재요건을 확인한 뒤 선이자 70여 만원을 떼고 할인해 주었다는 것.
유림금속사 종업원들인 강씨 등은 회사자금조달을 위해 종업원 17명이 가계종합예금에 무더기로 가입한 뒤 받은 가계수표용지 6백90장을 자신들의 보증카드를 이용, 원고 조씨 등을 통해 할인해 왔다.
원고 조씨는 지난해 1월부터 3월 사이 발행일자를 써넣은 뒤 피고 은행측에 2백30장에 대한 현금지급을 요구했으나 『가계종합예금약정에는 자신이 교부 받은 수표용지만을 사용토록 돼있고 백지보충권(발행일 기재 없이 백지수표를 발행할 수 있는 규정)에 관한 규정이 없다』며 지급을 거절하자 지난해 4월 소송을 냈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다른 사람의 가계수표 용지로 수표를 발행했더라도 이는 발행인과 지급인인 은행사이의 약정위반 등 대내적인 관계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가계종합예금 약정에 폐지보충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백지발행이 금지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원고승소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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