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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피아니스트?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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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

그는 피아니스트이다. 유대인이고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꽤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바르샤바에 나치군대가 들어온다. 유대인 박해가 시작된다. 그와 가족은 게토지역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그곳에도 약간의 일상생활이 남아 있어서 그는 카페에서 연주를 하며 살아간다. 그것도 잠시, 게토의 유대인들은 기차에 실려 수용소로 이송된다. 가족들이 모두 죽음의 길을 떠나는데 그는 기적처럼 거기서 빠진다. 숨어서 사는 아슬아슬한 나날들, 삶과 죽음이 수시로 교차한다. 한 조각의 빵을 구하는 일, 총구를 피해 한 시간이라도 더 사는 일 외에 모든 것이 유보된다. 굶어 죽기 직전, 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의 어느 집에서 음식 깡통을 발견한다. 그러나 깡통을 딸 수 있는 도구가 없다. 쇠꼬챙이를 발견하고 겨우 구멍을 몇 개 냈는데 그의 앞에 독일군 장교가 서 있다. “당신 누구요?” 그 장교가 묻는다.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는 피아니스트였다고 대답한다. “피아니스트? 한번 연주해 보시오.” 장교는 그를 옆방으로 데리고 간다. 피아노가 있다. 목숨을 걸고 마지막 남은 힘으로 그는 그리웠던 악기를 연주한다. 쇼팽의 발라드다.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시는 명장면이다. 그 이후가 궁금한 분은 영화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감독)를 보시면 된다.

 전쟁의 광기와 살육의 공포 속에서 음악은 미미한 존재다. 도시를 빼앗기고 포로가 되고 성폭행을 당하고 무더기로 사람이 죽는 앞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그 피아노 연주 장면은 웅변한다. 이 미미한 것을 희생하면서 획득한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슬람국가(IS) 무장단체가 20여 명의 이집트인을 죽이는 뉴스를 보았다. 검은 복면을 쓴 무장대원들, 그 앞에 꿇어앉은 사람들, 그들의 목에 들이댄 낫, 그리고 피에 물든 바닷물…. 미친 짓이었다. 그래서 나치의 광기가 생각났던가 보다.

 테러는 언제나 있었다. IS가 활동하는 그 지역에서는 ‘거의 항상’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나에게 그 소식들은 ‘그곳’의 얘기였다. 왜 그러는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짐작이 갔지만 그 일로부터 나나 우리나라는 거리가 있다고 느꼈다. 이번에는 달랐다. 문정인 교수가 중앙시평에서 적절히 지적했듯 그들은 이슬람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다. 실체도 목적도 명분도 방식도 황당하다. 그들은 위대한 신의 이름을 부르고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존재와 정당성을 부르짖고 악과 싸우리라는 각오를 다짐하는데, 나에게 들리는 것은 증오와 광기뿐이다. 그리고 그 외침은 우리의 광기를 부르고 있다.

 어디에나 분노와 증오가 있다. 이런 환경을 좋아하고 그 안에서 잘 자라는 논리와 행동이 있다. 고백하건대 내 안에도 있다. IS 대원의 외침은 우리 안에 있는 이 부분을 깨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음들이 모여 여론이 되고 집단행동이 되기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미 세계는 좁아졌고 증오가 우리 안에 만연된 지도 오래다.

 세상이 험해지면 미미한 것들부터 사라진다. 자유롭게 오가던 곳을 못 가게 되고 마음 놓고 펼치던 행사를 접는다. 덜 중요한 일들은 생략되고 권장되는 일만 남는다. 전쟁 상태가 되면 허락되는 것만 남고 더 악화되면 강요된 것만 남는다. 그때쯤 도시는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고 인간성은 참혹한 경험 끝에 황폐해진다. 그제야 사람들은 지쳐서 다짐한다. “다시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말자.” 그리고 미미한 것들을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나누는 귓속말, 햇빛 속에서 마시는 커피, 작은 칭찬, 휴일 오후의 낮잠, 생선 굽는 냄새가 풍기는 저녁 골목, “얼룩백이 황소의 게으른 울음”, 좋아하는 음악, 그 음악회, 그 음악회에서 만나는 낯익은 얼굴들…. 이런 것들이 ‘세상이 험해지면 제일 먼저 사라지는’ 미미한 것들이다. IS가 버린 것이 이것이고 그들이 죽이려는 것이 이것이다. 그렇다면 이 미미한 것들이야말로 IS가 두려워하는 것이며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무기가 아닐까. 그들이 기관총과 낫을 들고 증오와 광기를 부르고 있지만 사실은 이 미미한 것들의 상실과 그에 따른 절망을 호소하는 것이 아닐까.

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