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국과 남북 당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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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작년 말부터 거론되기 시작한 한반도 문제가 미·일·중·소 등 주변국가들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이미 제기돼 있는 우리 정부의 남북한 양자 회담, 여기에 미국을 추가하는 북한의 3자 회담, 그리고 남북한과 미국·중공이 참가하는 「레이건」의 4자 회담에서 별다른 진전은 없으나 내면적으로는 활발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정치국원이고 전직 외상인 허담은 현재 개최 중인 최고 인민회의 (의회) 연설에서 3자 회담에 더 추가될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레이건」의 4자 회담에 대한 북한의 반대의사 표시로 해석된다.
중공은 소극적이긴 하지만 북한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소련은 미국과 하급관리 수준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는 응하고 있지만 아직은 구체적인 의사 표시를 보류하고 있는 상태다. 소련과 북한 사이에 걸려있는 미결 문제 때문인 것 같다.
이른바 김정일 승계 문제를 중공은 지난 여름 승인하고 말았지만 소련은 아직 입장 표시를 보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에 대한 소련의 발언권이 강력할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우리측에도 있다. 우리가 양자 회담을 제안해 놓고 있는데 「레이건」 대통령은 4자 회담을 내놓았고 「슐츠」 국무장관은 남북한 양자 회담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를 대표한 한 고위 관리는 최근 양자 회담이나 4자 회담이 모두 가능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3자 회담에 회의를 표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 정부는 양자 회담을 내놓고도 3자 회담엔 반대하나 4자 회담이나 6자 회담은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유연성이 있는 것은 좋으나 우리의 입장이 보다 분명하고 강력하게 천명되어야 할 단계가 왔다고 본다.
26일엔 일본의 「아베」 (안배진태낭) 외상이 미국에 갔다. 그는 「슐츠」 국무와 만나 한반도 문제를 가장 중요한 이슈로 다루겠다고 밝혔다.
우리로서는 한반도 문제 회의를 위한 협의 과정에 우리 정부가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런 예비 과정도 결코 소홀히 방치돼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가 보다 분명한 설계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도전해야할 과제라고 본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대화 요구가 쌍방에 의해 요즘처럼 구체적 적극적으로 표명된 적은 근래에 없었다. 지금이 시기적으로도 우리에게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아웅산 만행으로 도덕적 기반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중공이 미일과의 관계를 크게 개선했다. 한·미·일 3각 관계도 그 어느 때 보다 긴밀하다.
이런 유리한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정부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나서서 기필코 대화 재개를 달성해야할 것이다.
우리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한반도 문제는 우리 민족 내부 문제이므로 민족 주체성과 민족자결주의 원칙에서 논의, 해결돼야 한다는 점이다. 입만 벌리면 자주와 주체를 외쳐온 북한이 남북한 직접 대화를 거부하고 외세를 끌어들이는데 앞장서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회담 기구로서는 남북한 당국이 직접 대화하는 양자 회담이 최선의 형태이다. 주변 국가들은 외곽에서 양자 회담을 지원하고 보조 역할을 하는 선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남북 회담은 7·4 공동 성명과 그 후에 남북 간에 합의된 사항에서 재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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