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해진 동서 관계 대화 숨통 트이려나|미·소 외상 「스톡홀름 대좌」 주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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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7일 스톡홀름에서 개막된 33개국의 「유럽 신뢰 조성 및 군축 회담」이 작년 12월 이후 완전히 단절되다시피 한 동서간의 대화, 특히 미소 관계에 숨구멍을 마련해 주기를 서방 국가들은 기대해왔다.
지난해 9월 유럽 안보 협력 회의가 종결되면서 「유럽에서의 군사 대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안보 협력 회의의 속편이자 서자 격으로 마련된 이 회의는 미소 양국간의 군축 회담들과는 달리 참가 범위나 의제가 매우 포괄적인데다 2년 넘게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성급히 어떤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서구 국가들이 회담에 거는 희망은 회담 자체보다는 최근 몇달 동안 급격히 싸늘해진 동서 관계의 완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당장의 효과에 집중돼왔다.
지난해 10월 미국이 퍼싱Ⅱ등 중거리 핵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하면서 소련은 제네바에서 열려온 INF (중거리 핵 감축) 협상과 START (전략 무기 감축 회담), 빈에서 진행돼온 MBFR (상호 균형 감군) 협상 등 군축 회담을 일방적으로 중단했고 미소간의 직접 대화는 두절된 상태나 다름없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이건」 미 대통령의 동서 대화 촉구에 뒤이어 스톡홀름에서 열린 「슐츠」 미 국무장관과 「그로미코」 소련 외상의 18일 회담은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다.
두 사람의 회동은 지난해 9월 KAL기 사건 후 마드리드의 유럽 안보회의 종결 회담 때 만나 격렬한 설전을 벌인 후 이번이 처음이다.
5시간 넘게 계속된 이 회담의 자세한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소련 타스통신이 회담사실을 보도하면서 보인 강경 논조나 회담에 앞서 「그로미코」 외상이 군축 회의 석상에서 한 연설, 그리고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또 접촉을 갖기로」 합의한 정도 외에는 미소 군축 협상 재개 등에 관한 뚜렷한 진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유럽 미사일 배치에 관한 양국의 팽팽한 대립이 이번 회동에서 쉽사리 풀어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만큼 이 같은 결과는 전혀 뜻밖이 아니다.
그러나 서방측은 소련이 아직은 강경 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지만 멀지 않은 장래에 적당한 계기를 잡아 어떤 형태로든 미국과 다시 대좌할 것으로 본다.
대화 재개의 필요성은 소련이 더욱 다급한 형편이라는 분석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우선 소련이 서방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고립된 가운데 버텨나갈 만큼 경제적 기반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일반적 논리다.
그러나 더 현실적인 이유로는 최근 드러난 소련 권력 구조의 움직임, 즉 지난해 l2월말 「안드로포프」가 정치 국과 서기국에 자기 지지 세력을 보강함으로써 군축에 관해서 강경파인 군부를 비롯한 경쟁 세력의 득세를 억제하는데 일단은 성공한 듯 싶다는 사실을 든다.
또 한가지 근거는 동구와 소련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중거리 핵무기 배치에 대응하여 소련도 추가로 동독을 비롯한 동구 국가들에 핵미사일을 배치하게 됨으로써 일고있는 불만과 반발이다.
동구 국가들 중 몇 나라는 소련의 핵무기 정책에 마지못해 소극적인 지지를 하고는 있으나 불가리아와 헝가리·루마니아처럼 공개적으로 자기네 나라 배치를 『환영하지 않겠다』 고 태도를 밝히는 나라도 있다.
또 하나의 변수는 미국 선거다. 「레이건」이 선거 운동에서 약세를 보이면 소련은 보다 온건한 새 대통령이 들어서기까지 현상을 유지하며 기다리려 하겠지만 「레이건」의 재선 가능성이 지금 정도로 유지되면 소련은 어차피 계속 상대해야 할 「레이건」 정부와의 협상을 굳이 미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레이건」이 선거와 서구 여론을 얼마나 의식하고 그것을 대소 정책에 반영해 소련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융통성을 얼마나 보이느냐에도 동서 관계의 앞날은 달려 있다. 【본=김동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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