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방송이 바뀌면 국민이 행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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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공영방송에 관한 우리의 논의는 80년대 군사정권하에서 정치물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문제가 주된 논쟁거리였다면, 90년대 이후에는 공영방송의 상업화와 특정 집단이나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새로운 방송환경의 대두와 함께 논제로 등장하면서 아직도 정치권력과 상업화에 머물러 있다. 정치권력이나 상업적 이해로부터 독립해서 국민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보편적 서비스와 다양성.공정성 등을 생명으로 하는 공영방송의 본질에 관한 논의는 이미 유럽에서는 70년대에 종언을 고한 사안임에도 말이다.

대단히 역설적이게도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파의 월경(越境)이 자유롭게 된 21세기에 공영방송의 역할과 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면서 세계 각국은 공영방송의 가치를 더욱 중시하고 있다. 게다가 모든 부문에서 진행되는 국제화.세계화의 움직임은 방송의 국제경쟁력 강화까지 요구하고 있다. 그 이유는 기존에 방송이 추구했던 언론으로서의 전통적인 역할인 정치적 의사형성과 국민의 여가생활 보조라는 점 외에도, 현대 복지국가, 위기국가하에서 상업방송이 결코 수행할 수 없는 중요하고도 필요불가결한 기능, 즉 사회문화적 통합기능과 국가의 정체성 확립 기능을 공영방송만은 반드시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공영방송은 아직도 '공영'이라는 수식어가 붙기에도 역부족인 채 20세기적 '방송'의 기능과 역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영방송의 특성상 재원은 물론이고 프로그램 편성과 경영 면에서도 국민의 통제는 필연적이다. 게다가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의 공영방송은 사회통합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보편적 서비스와 시청자 복지가 보장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공정성과 효율성.다양성을 담보하는 동시에 국제경쟁력도 갖추어야 한다. 과도한 관료주의와 운영진 구성의 비민주성, 경영의 비효율성, 국민의 통제 부족, 프로그램의 편향성과 형평성, 공정성 논란 등은 공영방송의 존재 의미와 목적을 의심하게 하는 부정적인 단면들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치유하기 위해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방송발전연대)라는 범국민적 시민단체가 발족한다니 그 역할이 기대된다. 우리의 공영방송이 '공정성' 논란이라는 20세기 초보적 화두에서 벗어나 21세기 국제화시대에 맞는 자랑스러운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도록 어린이.청소년.장애우.노인들을 위한 수준 높은 프로그램도 제대로 마련하고, 날로 왜곡되고 품위가 떨어지는 방송언어도 바로잡으며,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문제점을 잉태하고 있는 방송법제와 경영방식도 개정할 수 있도록 방송발전연대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본다. '방송이 바뀌면 국민이 행복해지리라'는 꿈을 안고서 말이다.

박선영 가톨릭대 교수·법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