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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과 세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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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아버지가 다하지 못한 혁명 위업은 대를 이어 아들이 할 수 있다."

1971년 김일성은 노동당 기관지 '근로자' 8월호에서 아들 김정일이 후계자임을 암시했다. 김정일은 당시 29세로 당 문화예술부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충성스러운 아들이었다. 오늘날 북한 인민들이 달고 다니는 '김일성 배지'는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70년 5차 당 대회를 앞두고 배지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인민의 삶 속에 '김일성 유일(唯一)사상' 을 확실히 심겠다는 의도였다.

그런 그를 아버지는 마음에 들어 했다. 김일성이 동생 영주에 대해선 "독하지 못한 게 문제"라면서 "정일이는 독한 것이 장점"이라고 한 게 그 예다. 김정일이 삼촌과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충성심이 강한 데다 독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은 74년 2월 서른둘의 나이로 수령의 공식 후계자로 지명된다. 반면 김영주는 당 조직담당 비서직에서 물러난다. 이때 북한 언론매체는 김정일을 '당 중앙'이라고 했다. 당의 실권자란 뜻이다. 망명한 노동당 비서 출신 황장엽씨는 "74년 2월부터 94년 7월(김일성 사망)까지의 북한 체제는 김일성.김정일의 이중정권이었다"고 했다. 김정일의 권력이 처음부터 셌다는 얘기다. 그건 그가 64년 노동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이 된 이래 10년 동안 정적(政敵)을 제거하며 권력 승계 준비를 철저히 한 결과다.

김정일이 아버지의 권력을 물려받은 지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의 나이는 예순셋이다. 김일성이 그를 후계자로 정했을 때의 나이보다 한 살 많다. 그러니 그에게 후계 고민이 없을 리 없다. 마침 차남 정철(24)이 권력을 세습할 거라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정철이 지난달 북한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환영만찬장에 나타났고, 북에선 그를 후계자로 정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등의 얘기다. 이런 보도가 확인된 건 아니다. 북의 후계구도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한가지 확실해 보이는 건 김정일이 3대에 걸친 부자(父子)세습을 시도할 거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게 성공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김정일은 권력을 물려받기도 했지만 스스로 쟁취하기도 했다. 그에 비해 세 아들은 모두 약체다. 그들에겐 미화할 만한 업적도 없다. 북한 인민은 어떨까. 그들의 의식이 30년 전과 똑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때는 21세기다.

이상일 국제뉴스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