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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고액연봉보다 살림 … 집으로 돌아온 그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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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하우스와이프2.0
에밀리 벳차 지음
허원 옮김, 미메시스
432쪽, 1만6800원

“엄마처럼 살기는 싫어요.”

 어쩌면 이 명제는 어느 나라, 어느 세대 여성에게나 통용되는 불변의 법칙인지 모르겠다. 1908년 미국 뉴욕의 럿거스 광장에 모여 참정권을 요구했던 여성 섬유노동자 2만 명도, 1930년대 ‘남성과 똑같이’를 외쳤던 여성 비행기 조종사 아멜리아 에어하트도, ‘유리 천장’을 박살내고 사회의 정점에 오른 그 이후 세대 여성도.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게 페미니즘의 모토였다.

 요즘 젊은 여성도 마찬가지다. 한데 이들이 추구하는 건 주방을 박차고 나오려는 열망으로 가득했던 이전 세대와 다르다. 손수 구운 빵과 케이크 사진을 SNS에 올리고, 베란다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를 먹으며 자랑스러워한다. 직장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것보다 아이와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데 집중한다. 분유 대신 모유를 먹이고, 시판 이유식 대신 유기농 채소와 곡식으로 만든 이유식을 먹이고, 훈육보다 애착 육아에, 공교육 대신 홈스쿨링에 관심을 갖는다.

2세대 전업주부들은 자연 친화적이고 건강한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킨포크(kinfolk)’의 선구자다. 채소를 직접 기르고, 뒷 마당에서 닭을 치며, 친구들을 초대해 바비큐 파티를 열고, 직접 구운 빵을 선물하는 것을 즐긴다. [사진 미메시스]

 지금 20~30대 세대 가운데는 엄마가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혼자 집 문을 따고 들어와 가공식품을 먹으며 하루를 보냈던 이들이 많다. 이들은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집중하고, 기꺼이 가사를 돌보기도 한다. 사회적인 명망을 얻은 엄마 세대는 ‘우리가 몇 십 년에 걸친 투쟁 끝에 이룬 것을 딸 세대가 후퇴시킨다’며 한심해 하지만 딸들은 “왜 한심해?”라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책은 이런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가정의 시대’를 다뤘다. 기성세대의 가정주부와는 완전히 다르게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 문제에 관심 많은 2세대 가정주부인 ‘하우스와이프 2.0’을 양산해내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자연적이고, 전통적인 스타일의 가사를 자발적으로 하고자 한다. 과거의 가정주부는 남성들에게 자신을 낮추고 아이들과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데 올인하고 남는 시간에 아침 드라마나 보는 어머니상으로 비치곤 했다.

 하지만 2세대 가정주부는 다르다. 하버드 MBA를 졸업한 30대 여성이 높은 연봉의 직장을 버리고 태양열로 돌아가는 집에서 손수 구운 빵을 먹으며 살고, 자연주의 육아법으로 아이를 기르고, 뜨개질·퀼트로 잡지에 나올 법한 집을 꾸미며 사는 식이다.

 이런 움직임은 낯설지 않다. 지난해 미국 잡지 ‘킨포크’의 영향으로 느긋하고 소박한 집 밥 모임이 SNS를 타고 유행하기도 했다. 결혼 뒤 제주에 자리 잡은 가수 이효리의 자연주의 생활에 많은 이가 열광했다. 케이블 채널 tvN의 ‘삼시세끼’를 보며 정선이나 만재도의 느린 삶이 화두가 됐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책은 왜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가정에 천착하는지 그 이유에 주목했다. 과연 엄마 세대의 생각처럼 여성의 지위가 엄청나게 퇴보하고 있는 성 차별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여성의 자아실현으로 봐야 할지를 풀어냈다. “페미니즘이 여성을 직장으로 몰아내 가정과 아이들이 망가졌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설득력 있고 신선한 반론이 될 법하다.

[S BOX] 미국 직장맘 84% “아이들과 있고 싶다”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은 우리에게 유리천장을 뚫고 어디든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약속했어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직장으로 나갔고 곧 깨달았지요. ‘이런…거지 같은 삶을 봤나.’ 육아휴직은 너무 짧고, 가정이랑 직장 일이랑 다 잘하는 건 불가능하고, 세상에 직장과 가정생활의 균형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더라고요.” (41쪽) 책 속에 등장하는 38세 직장여성 멜라니의 말이다. 2012년 잡지 ‘포브스 우먼’ 설문조사 결과 미국 직장맘의 84%는 ‘집에서 아이들과 있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1994년 15세 미만 자녀를 둔 가정에서 엄마가 전업주부인 경우는 19.8%였지만, 2008년엔 오히려 23.7%로 늘었다. 저자는 이전 세대 여성은 일과 가정을 모두 유지하려고 고군분투한 끝에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요즘 젊은 여성은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저렇게까지 사생활을 희생해서 저 자리에 오르고 싶은가’를 자문한다고 풀이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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