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事카드 있어야 北核해결에 도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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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북핵 위기 때 대북 협상을 주도한 미국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과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대사, 정종욱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10년 만에 다시 모여 새롭게 불거진 북핵사태를 논의했다.

19일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주관으로 열린 '북핵사태, 1994년과 지금'이라는 토론회에서다. 이들은 "군사행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아야 역설적으로 평화적 해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발언 요약.

▶페리 전 국방장관=미국은 이라크전 이후 자신감을 갖게 됐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군사적 능력에 의존하려는 것 같다. 한국의 정권이 바뀌었고, 새 정권은 경험이 부족하다.

한국은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한 핵을 용인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것은 수사(修辭)일 수도 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북한의 핵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일본은 미사일 방어망에 더욱 집착하고, 핵무기를 보유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는 동북아의 재앙이 될 수 있다.

중국은 북핵 사태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다가 최근 태도를 바꿨다. 북한에 연료 공급을 중단하면서 압력을 가하고, 베이징(北京) 3자회담이 성사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피하려면 대화해야 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착각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평화적 해결을 해야 하지만 무력사용 가능성을 포기하면 안 된다. 대신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 두려움과 협상하면 안 되지만 협상하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대사=94년의 경험에서 네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협상으로 미국과 동맹국들의 이해를 관철할 수 있다. 제네바 협정에 대해 비판이 많지만 그게 없었다면 지금쯤 북한은 1백여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지 모른다.

둘째, 중국을 이용할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의 급속한 붕괴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북한이 무릎을 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셋째, 북한에 계속 압력을 가하는 게 중요하다.

94년 북한은 남한을 불바다로 만든다고 하고, 핵개발 협박을 했다. 이런 가운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협상에 성공한 이유는 미국이 여차하면 군사행동을 한다는 걸 북한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넷째, 북한은 서울과 워싱턴을 갈라놓는 전략을 계속 사용할 것이다. 불행히도 시간은 미국편이 아니다.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다. 그걸 막으려면 미국은 서둘러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

▶정종욱 전 외교안보수석=중국은 북한에 경제적.군사외교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북핵 문제는 외교와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 그러나 그냥 외교가 아니라 압력을 넣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대화의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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