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이 30cm만 높았어도…'실족사' LG트윈스 이장희 유족에 건물주 손해배상해야

중앙일보

입력

서울 시내 한 건물 주차장에서 실족사한 LG트윈스의 2군 내야수 이장희(사망 당시 24세) 선수 유족에게 건물주가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부장 박영재)는 이씨의 가족이 사고가 발생한 건물의 소유주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7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이씨는 2013년 7월 15일 서울 송파구의 한 건물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오전 1시30분까지 술을 마신 뒤 혼자 술집을 나선 이씨는 술집 맞은편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행인에게 처음 발견됐고, 이후 실족사라는 추측이 나왔다.

사고가 난 건물은 측면에 지상주차장이 있고 뒤쪽에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구조였다. 계단에는 높이 73.5cm짜리 난간이 설치돼 있었다. 지하주차장 바닥에서 지상까지 높이는 4m였다. 또 이 건물은 출입이 제한되지 않아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재판부는 “보통 체격인 이씨가 술에 만취해 계단 난간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다 추락해 숨진 것으로 보인다”며“만약 이씨가 자살하려고 했다면 난간 너머 등 쪽으로 추락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 ‘술자리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동석자들의 진술에 비춰서도 이씨가 자살할만한 사정이 엿보이지 않는다”고 제시했다.

특히 “문제의 난간은 평균적인 체격의 성인 남자를 추락을 막을 정도의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 하자가 있었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건축법 시행령 제40조 제1항에 따르면 옥상광장 또는 2층 이상의 층에 있는 난간 주위에는 높이 110cm 이상의 난간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의 난간은 73.5cm 높이였다. 재판부는 “사고 발생 뒤 건물주들이 난간의 높이를 113cm 정도로 높이는 공사를 시행했다”며 “건물주들도 73.5cm의 난간으로는 추락 위험을 방지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난간의 하자와 이 선수가 추락한 것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인다”며 난간 관리 책임이 있는 건물주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성인인 이씨가 난간의 높이가 낮아 추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도 만취 상태에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건물주들의 배상 책임을 20%로 제한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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