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스」부호시대에 첫출근…「광통신」시대에 떠나다|46년만에 정든 체신부"아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기쁜 소식·슬픈 소식 갖가지 사연을 띄어보내며 살아온 외길인생 반백년이 계해년과 함께 마감을 맞는다.
함박눈이 내리는 30일 울드랭사인 이별곡이 울리는 속에 46년3개월동안 정든 체신부를 떠나는 정규복씨(61·철도우편운송국장)는 마지막 우편행랑을 손수 떠나보내며 퇴임식을 가졌다.
『길은 없어도 철마는 계속 달리고 싶겠지요.』기념패에 새겨진 석별의 글귀에 정씨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46년전 모르스키를 두드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세기가 흘렀고 때마침 개막되는 「광통신시대」를 보며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군요.』낙조의 놀을 안고 우체국을 나서는 정씨의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정씨가 우체국일을 시작한 것은 서울의 체신사원양성소(체신관리양성소)를 졸업하고 고향인 당진우체국의 유선통신사로 발령받은 l937년10월. 기생집 큰 요리상이 10원하던때 채신공무원이 되어 국장이 되기까지 그의 반세기 외길인생은 바로 우리나라 체신의 산 역사.
초창기에 쓰던 모르스부호는 무선통신으로 변했고 증기기관차의 한칸을 얻어 우편물을 전달하던게 지금은 디젤기관차의 6량을 우편 전용칸으로 쓰게되었다.
1955년 서울체신부로 전근된 정씨는 그동안 맡은 직책만도 18가지. 전파감시국 감리계장·집배운송계장·국내우편과장·우정과장등 두루 안거친 것이 없다.
그동안 거쳐간 장관만도 20여명. 손가락에 못이 박히도록 띄어보낸 숱한 사연중 제일 기뻤던 소식은 조국해방을 알리는 것이었다.
『서산우체국에 있을때 해방을 맞았습니다. 일본천황의 항복뉴스가 유선을 타고 타전되었습니다. 미친듯이 이웃 우체국에 해방이 되었다고 특전을 쳤지요』
그러나 그자신의 손으로 죽음을 알리는 부음을 칠때가 가장 괴로웠다.『일본에 징용간 사람들에게 마지막까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숨져간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전할 때가 가장 가슴아팠습니다.』
정씨는 한통의 편지를 배달하기위해 하루 백여리를 걷는 집배원이 바로 체신공무원의 참모습이라고 힘을 준다.
『우편업무는 바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작업이지요.』이 약속을 지키며 살아온 46년동안 그의 생활신조는 자연히「성실」로 집약되었다.
그가 받는 퇴직금은 3천2백만원.『연금으로 한달에 41만원씩 받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장성해서 돈들일이 없으니 우리 늙은 부부가 살기엔 족하지요.』서울 상도동24 대지50평, 건평 25평의 집이 유일한 재산.
부인 장견석씨(58)와 1남3녀의 가장인 정씨는 젊었을때 방방곡곡으로 전근다니느라 고생이 많았던 부인에게 지금부터 봉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40년간 모아온 우표가 1천3백여종.『내청춘 내인생을 투영하고있는게 있다면 바로 이 우표책이지요.』
등산이 취미인 정씨는 주말이면 우표책을 갖고 산에 오르겠다고한다.
『산에 오르면 철마의 울음소리가 모르스부호의 키두드리는 소리가 더 선명히 들려오지요. 송년등산때는「체신부 할아버지집으로 돌아가다」하고 전보를 쳐야겠습니다.』
정든 동료, 정든 책상을 뒤에 두고 돌아가는 정씨의 그림자가 하얀 눈위에 길게 드리운다.<장재열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