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씻기고 밥 먹여 … "가족 간병부담 덜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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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난소암 투병 중인 강순신(73·여)씨는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지난달 23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병원 81병동에 입원했다. 그의 집은 차로 2시간 거리인 경기도 용인시. 일부러 이 병원을 찾았다. 이곳이 ‘보호자 없는 병원’으로 불리는 포괄간호 서비스 시범 사업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당 간호사는 하루에 20~30번씩 들러 강씨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가 식사 후 호출 벨을 누르면 간호사가 금세 달려와 식판까지 치웠다. 81병동 복도엔 강씨를 포함해 환자 명단이 적힌 현황판도 있었다. 환자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빨간색, 환자가 호출하면 흰색 불이 켜졌다. 81병동 어디를 가더라도 보호자 침상과 짐 등이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 2일 밤 퇴원한 강씨는 4인실에 8일간 입원하고 간병비로 5만9840원을 냈다. 건강보험 적용 혜택을 받아 하루 7500원 정도만 부담했다. 일반 병동에 입원해 간병인을 고용했다면 간병비만 하루 7만~9만원이다. 그는 “간병인 쓰는 데 비하면 비용이 적게 드니 좋다. 자녀들이 모두 직장에 다니는데 부담 주지 않아도 되는 게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일산병원 같은 ‘보호자 없는 병원’은 전국 26곳이다. 보건복지부가 2013년 7월 포괄간호 서비스 시범 사업을 시작하면서 시범 병원에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팀을 이뤄 24시간 환자 간병을 맡는다. 간호사 한 명이 보통 환자 8~10명(일반 병실은 1대 16~20 수준)을 돌본다. 30~40명의 환자가 모인 병동엔 간호조무사도 한 명씩 따로 배치돼 있다. 간호사는 일반적인 간호업무 외에 목욕·양치·배변 등 개인위생 관리, 식사 보조, 욕창 방지 처치 등도 한다.

 이런 덕분에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고려대 의대 안형식 교수가 2013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포괄간호 병원 환자 7833명, 간호사 30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환자 85%가 “다시 이용하고 싶고 주변에 권하겠다”고 답했다. 간호사가 자주 들여다보니 욕창·낙상도 줄었다. 일반 병원에 비해 욕창은 75%, 낙상은 19% 감소했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 환자 1인당 간병비용은 연 275만원으로 입원비(231만원)보다 많다. 포괄간호가 전면 도입되면 환자와 가족들의 비용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또 병실 환경이 쾌적해지고 감염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간호사의 경우 업무량은 늘어나나 업무에 대한 만족도(5점 만점에 2.9점)는 일반 병원(2.7점)보다 높았다.

일산병원 간호사 홍나숙(43)씨는 “예전엔 의사의 처방만 시행하는 정도였다면 이젠 환자와 자주 만나면서 주체적으로 일을 하게 됐다. 업무량이 늘어난 건 맞지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복지부는 이런 ‘보호자 없는 병원’을 올해 연말까지 100개로 늘리고, 2018년부터 전국 병원에 의무 적용할 계획이다. 이달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3일 포괄간호에 대한 건강보험 시범 적용 가격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간병비를 포함한 입원료는 현행(4만6000원, 종합병원 간호인력 3등급 기준)보다 약 1만9000~3만7000원 늘어나나 환자 부담은 3800~8000원 정도다.

 선진국에선 간병인이나 환자 가족 없는 병원이 일반적이다. 일본도 1995년 간호인력 중심으로 병원 체계를 바꿨다. 하지만 현장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간호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인구 1000명당 활동 간호사 수는 4.7명으로 일본(10명)의 절반 수준이다.

박상근 대한병원협회장은 “전국 병원으로 확대할 경우 간호사 6만5000명, 간호조무사 5만5000명이 추가로 필요한데 그렇게 빨리 인력을 충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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