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출제 표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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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학입학 학력고사문제를 일본의 문제집에서 베껴썼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는 출제관리의 어딘가에 허점이 있음을 반증이라도 하는 듯 해 더욱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원출제자가 한국의 대학입학학력고사문제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의 출제는 저작과 마찬가지로 창작활동이고 창작품의 허가 없는 사용은 표절이기 때문이다.
관계당국자의 말처럼 비록 문제자체에는 문제가 없어 다행일지 모르지만 이는 문제의 질 문제가 아니라 원출제자들의 눈에는 학력고사 담당출제위원의 학자적 양심과 나아가서는 국가적 자존심까지도 경멸의 대상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령 영어권(미어권)국가유학생선발을 위해 문제은행 식으로 관리되고 있는 TOEFL시험을 치르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이는" 영어권국가에서 수학을 하기위해 요구되는 영어실력을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표준화 된 문제로 특정분야인력선발을 위해 저작권자에게 사용료를 내고 쓸 수 있도록 돼있다.
그러나 이번에 말썽이 되고있는 대학입학학력고사의 일본어문제는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우선 원전인 와세다대의 문제집은 와세다대학에 유학하려는 외국인의 일본어실력을 평가하기 위해 출제돼 사용했던 공개된 문제를 모은 것으로 출제의 목적이 우리의 대학입학학력고사와 맞지 않는다.
문제자체가 공개되지 않고 사용료를 내면 이용할 수 있는 문제은행식 관리를 하는 문제도 아니다. 수험생 참고용으로 공개출판 돼 있는 문세집을 학력고사출제위원이 「참고이상의 참고」를 한 셈이다. 그것도 특정학교나 단체가 실시한 시험이 아니라 국가주관의 전국고사에서 있었던 사실이란 점 때문에 더욱 가볍게 보아 넘기기 어려운 데가 있다.
고교에서의 일본어교육이 시작된지가 10년에 불과, 학습 및 평가자료개발이 총분하지 못한데다 영어 등 다른 외국어와의 난이도조정을 위해 교과서문장출재를 피해야 했고 관련분야학과가 많지 못해 출제의원 선정인력부족까지 겹쳐 이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는 관계당국자의 고층은 이해할만하다.
그렇지만 50문제를 출제하면서 그 가운데 16문제를 이미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버린 문제로 채울 정도라면 말썽이 된 일본담옥젝 뿐 아니라 학력고사출제관리전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우려가 없지 않다. 대학입학선발고사에서 대학별본고사를 폐지하고 국가관리의 학력고사로 관인화 한 것은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문제의 질을 높인다는데도 있었다.
이번 일은 대학입학학력고사출제관리를 재검토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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