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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칼럼]정월 대보름의 정신은 ‘나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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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호 30면

5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이날 절식(節食)이나 풍속 중엔 속신(俗信)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대보름날 밤에 다리(橋)를 밟으면 다리(脚)가 튼튼해진다, 대보름에 곡식을 밖에 내어 놓으면 복(福)이 달아난다, 대보름에 개에게 밥을 주면 여름에 파리가 끼고 마른다, 그릇에 복쌈을 볏단 쌓듯이 높이 쌓아 올린 뒤 먹으면 복과 풍년이 찾아온다, 찬 술을 마시면 귓병이 생기지 않는다, 부럼을 먹으면 치아가 튼튼해진다, 상원채를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

소리가 같다 하여 다리(橋)와 다리(脚)를 연결시킨 것은 조상들이 웃자고 한 ‘썰렁 개그’처럼 느껴진다. 또 굳이 대보름이 아니더라도 곡식을 밖에 두면 반길 사람은 도(盜)씨 아저씨 밖에 없을 것이다. ‘대보름 개에게…’란 속신의 피해자는 견공(犬公)들이었다. 실제로 대보름엔 우공(牛公)에겐 한 끼를 더 대접했지만 개에겐 음식을 주지 않았다. 먹을 것이 없어 굶는 것을 비유하는 ‘개 보름 쇠듯 한다’는 속담은 이래서 나왔다.

‘그릇에 복쌈을…’이란 속신에 등장하는 복쌈은 참취잎·배춧잎·곰취잎 등 잎이 넓은 나물이나 김 등으로 밥을 싼 대보름 절식이다. 여기서 ‘복’은 보(보자기)를 뜻한다. 선인들에게 보는 곧 복이었다. 밥을 싸는 것은 복을 싸는 거였다. 복쌈이 복을 부르는 음식이란 과학적인 근거는 찾기 힘들지만 건강에 이로운 식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찬 술을 마시면…’에서 찬술은 대보름 절주(節酒)인 ‘귀밝이술’을 가리키는 것 같다. 대보름날 새벽에 이 술을 차게 해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한해 내내 귓병이 생기지 않으며 즐거운 소식만을 듣게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술이 손상된 청력이나 귓병 치유를 돕는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대보름날 찬 술을 나눠 마신 것은 정신 바짝 차려 농사 잘 짓자는 다짐으로 읽혀진다. 데우지 않은 술은 쓴 맛이 없어 목 안으로 부드럽게 넘어간다. 대보름날 아침에 숙취를 호소한 조상들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부럼을 먹으면 치아가…’도 큰일 날 소리다. 부럼은 호두·잣·밤·은행·땅콩 등 겉이 딱딱한 견과류다. 과거엔 대보름날 밤에 부럼을 단번에 깨물었다. ‘딱’ 하는 소리에 놀라 잡귀가 달아날 뿐 아니라 이가 건강해질 것으로 기대해서다. 부럼과 ‘이 굳히기’(固齒之方)는 동의어였다. 부럼을 깨문다고 치아가 튼튼해질 리 없다. 오히려 ‘딱’ 깨물다간 치아가 ‘뚝’ 빠질 수 있다.

‘상원채를 먹으면 여름에…’에서 상원채(上元菜)는 대보름 채소다. 상원이 대보름의 별칭이기 때문이다. 상원채는 날채소가 아니라 말린 채소다. 또 한 종류의 채소가 아니라 대개 호박고지·박고지 등 아홉 가지 나물의 ‘합집합’이다. 선조들은 겨울부터 상원채 섭취 등 식생활 관리를 꾸준히 하면 여름에 더위를 잘 이겨낼 수 있다는 뜻으로, 상원채와 더위를 연루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아침엔 ‘더위팔기’에도 열광했다. 이날 아침에 만난 사람의 이름을 부른 뒤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고 하는 식이다.

옛 아이들은 대보름 전날인 열 나흗날에 연을 모두 날려 보냈다. 겨울 내내 연을 띄우고 놀다가 농사가 시작하는 정월 대보름 이후엔 연과 연(緣)을 끊은 것이다. 다른 연들보다 커서 더 멀리 나가는 귀머거리장군(將軍·연의 한 종류)까지 날려 보낸, 이를테면 ‘송액(送厄)’·액땜 행사였다. 연에 송액만리(送厄萬里)·송액영복(送厄迎福)·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고 쓴 것은 그래서다. 뭔가 멀리 훌훌 떠나가는 것을 빗댄 ‘정월 대보름날 귀머거리장군 연 떠나가듯’이란 속담도 여기서 유래했다.

어린이집 사고, 총기 사건, 황사 등은 물론 올해 들 액운을 모두 날려 보내는 대보름이길 기대해본다. 아울러 서로 더 나누는 한해가 되길 소망한다. 대보름 절식인 오곡밥의 별칭이 백가반(百家飯·백 집이 나눠 먹는 것이 좋다)이다.

박태균 식품의약 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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