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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빙간음죄 위헌, 간통죄 위헌 … 성매매처벌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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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성행위 여부와 그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의 전제인 자기운명결정권 속에 포함된 것’.

 헌법재판소가 1990년 간통죄에 대한 첫 결정 선고문에 적시한 ‘성적(性的) 자기결정권’의 정의다. 당시 헌재는 “성적 자기결정권은 헌법상 보장된 인권의 하나”로 인정하면서도 간통죄는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이 판단은 지난 26일 25년여 만에 뒤집혔다. 헌재가 재판관 7대 2로 간통죄를 폐기 처분하면서다.

 하지만 헌재의 위헌 결정은 느닷없이 나온 것은 아니다. 97년 동성동본금혼제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예고편’이었다. 헌재는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성적 자기결정권, 특히 혼인의 자유와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돼 있다”며 동성동본 커플의 결혼의 자유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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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결정도 올해 간통죄 위헌 결정의 ‘도약대’였다는 분석이다. 헌재는 “남성만을 처벌해 남녀 평등에 위배되고 다수의 남성과 성관계를 맺는 여성을 ‘음행의 상습이 있는 부녀’로 낙인찍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발(發) 성자유화의 도미노 현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올해 안으로 성적 자기결정권과 관련해 중대 사안의 하나인 성매매처벌법(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 대한 위헌 여부를 헌재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은 2013년 돈을 받고 성관계를 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43·여)씨의 재판 도중 성매매처벌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다. “착취나 강요가 없는 성인 간 성행위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헌재는 이 사건을 심리 중이다. 김정원 헌재 선임부장연구관은 “이는 직업 선택의 자유, 성의 상품화 문제 등과도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아는 사이가 아니라 돈을 매개로 한 성행위라는 점에서 찬반 대립각은 더 날이 서 있고 쟁점도 복잡하다. 김 부장은 “만약 성매매 여성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인정한다면, 이들에 대한 세금 징수의 문제 등 검토해야 할 사안이 많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이번 간통죄 위헌 결정에선 상대적 약자였던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를 위헌 근거로 제시했다. 이런 논리가 성매매 여성에게도 적용 가능한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만약 자유의지로 성매매를 선택했다면 성적 자기결정권을 실현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이는 경제적 이유에서 성매매를 선택한 것 자체가 사회적 불평등이 만들어낸 강요된 선택이라는 견해와 충돌한다. 배금자 변호사는 “성풍속에 관한 죄로 지정돼 있는 성매매처벌법을 ‘개인 도덕 문제’로 판단한다면 간통죄와 마찬가지로 위헌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다만 “사회 정서상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 매수자들에 대한 과잉 처벌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차미경 사무총장은 “포주 등 성매매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아닌 단순 매수자들을 국가가 처벌하는 게 옳은지가 논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헌재가 성적 자기결정권 확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혼란을 외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 변호사는 “성적 자유만 보장하고 또 다른 중요한 헌법상의 가치인 혼인생활은 보호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조경애 부장은 “어제, 오늘 ‘간통죄가 폐지되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를 묻는 상담전화가 많았다”며 “민사적 보완책이 나오기 전 상당 기간 동안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동성 간의 결혼 등 헌재에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관련해 판단을 구하는 사례가 더욱 늘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전영선·백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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