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에 등장, 목소리 높아진 소군부|관례깨고 장성들 회견잦아…권력구조에 변화있는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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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1년 사이「유리·안드로포프」서기장의 소련에 관한 바깥 세상의 관측들중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것은 『군부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주장이었다. 「브레즈네프」사후의 권력승계때, KAL기사건때, 그리고 최근 최고지도자가「잠적」해버린 뒤부터 5일의 INF관계 기자회견등에 이르기까지 소련군부의 그림자와 목소리는 심상찮게 짙고 높았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미워싱턴포스트지는 이문제에 관한 모스크바주재 외교관들과 소련관측통들의 견해를 종합했다. <편집자주>
「유리·안드로포프」서기장의 건강상태를 놓고 갖가지 소문과 추측들이 나돌고 있는 요즘 소련쪽에서 들리는 가장 또렷한 목소리는 군부의 것이다.
지난달 모스크바지역 군고위지휘관들과 국방성간부들은 정치국원인 「드미트리·우스티노프」국방상의 주재 아래 모임을 갖고 『군은「안드로프프」서기장의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만장일치로 채택해 당중앙위 및 서기장 앞으로 보냈다.
군의 이 같은 몸짓은「안드로포프」의 건강과 현체제의 과도적성격에 대한 온갖 가설과 관측들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취해진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깊다. 건강상태나 정치국내부의 움직임이 어떻건「안드로포프」서기장은 그가 최고지도자로서의 기본적 임무를 수행할 힘이 남아있는 동안은 군의 지지를 기대할 수 있음을 시사해주기 때문이다.
군의 이같은 정치적행동은 그동안 계속 악화돼온 미소관계에서 소련군부가 보여온 적극적이고 강경한 자세와도 맥락을 같이한다고 모스크바의 서방관측통들은 말한다.
군부는 예전에도 크렘린에서 가장 힘있는 압력 집단들 중의 하나이긴 했지만 군지휘관들은 전통적으로 정치문제에 관한 공개적 의사표명은 삼가왔다. 그런데 지난 한 햇동안엔 많은 고의장성들이 이례적으로 잇달아 비군사 간행물들에 글을 쓰거나 국내외기자들과 회견을 가졌다.
이런 현상이 대서방 강·온 양면 공격전술차원의 것이든, 혹은 크렘린권력구조에 깊은 변화가 빚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든, 군부가 2차대전 때를 제외하곤 소련사상 어느때보다도 소련대외정책의 수립과 수행에 큰 역할을 맡고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이를 보는 시각중엔 우선 요즘들어 동서관계의 초점은 군사 및 전략문제들이기 때문에 복잡다단한 이 문제들에 관한 소련의 입장을 국내외에 가장 잘 대변하고 설명할 수 있는 군지휘관들이 전면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KAL기 사건때나 유러미사일 대응책발표때등 예전 같으면 당이나 정부쪽에서 했을 큼직한 발표들이 요즘엔 군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어 주목거리다. 군부는 크렘린이 70년대에 데탕트정책을 추진하다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하고 80년대 들어선「레이건」 미행정부의 성격을 잘못 판단해 미국의 보수정책에 대해 빠르고 효과적인 대응책을 취하지 못한 사실등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음이 틀림없다.
이같은 불만은「브레즈네프」시대가 끝나가던 지난해 초「니클라이·오가르코프」원수가 소련은「레이건」의 도전에 대항할 준비를 적극적으로 해야한다고 크렘린지도부에 경고하는내용의 책을 펴내면서 구체화됐다. 군의 막후비판이 강도가 더해가자 「브레즈네프」서기장은 군이 필요로하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 새서기장 아래서도 군의 목소리가 계속 높아진 것은 민간지도자들이 의도적으로 이를 허용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장군들의 발언은 정책적 구속력이 없으므로 내버려둬도 괜찮을 뿐아니라 국민기강확립과 통제강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크렘린은 생각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견해를 펴는 관측자들은 소련군부가 당에 맞선 적은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든다.
그러나 유럽 중거리미사일에 관한 소련정책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서방외교관들 중엔 모스크바의 전략이 결국은 군부의 의사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점치는 이들이 많다.
만약 민간지도층이 군부의 압력을 이겨낼 수 있다면 동서관계의 악화를 가능한한 억제하는 쪽으로 나갈 것 같다.
그러한 전망의 근거로는 흔히 세가지가 들어진다. 우선 소련은 내년에 있을 미국대통령선거 결과가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미소위기가 깊어지고 길어져 양국의 접촉이 끊어지면「레이건」의 재선가능성이 더욱 커지는데 이건 소련이 원하는바가 아니다.
다음으로 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소련은 서유럽, 특히 동서관계에서 돌쩌귀 노릇을 하는서독의 안정을 깰 수 없는 처지다.
서독의 정정이나 입장이 흔들리면 동독과의 관계가 나빠지고 동구권전체에서의 소련이익에 악영향을 줄뿐 아니라 동구각국의 내정에도 불안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련은 미국미사일 배치 개시가 당장 전략균형을 깨지는 못하며 군축협상의 장기적 전망은 미국선거가 끝난 다음에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깨닫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생각과 노선에 군이 그대로 따라와 줄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설사 따라온다 하더라도 반대 급부로 신무기개발을 위한 군비예산의 증가를 고집하리라는 게 일반적 견해다.
【워싱턴 포스트=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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