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건축과 달동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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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요즘 서울에는 외국사진에서나 볼수 있었던 초현대식 건축물들이 심심찮게 들어서기 시작하여 언뜻 선진도시로 되는 날이 멀지 않은것처럼 느껴진다.
내노라는 기업가와 건축가들이 소위 일생일대의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허름하고 남루하지만 우리의 손때가 묻고 정이 들었던 집들과 동네가 뜯겨져 나가고 그후에 산뜻하고 눈부시게 새로운 건물과 동네가 들어서는 재개발사업도 진행중이다.
남루하고 허술한 집들이 사라지고 대신 언필칭 기능적이고 아름답게 단장된 작품들이 들어선다면 도시는 한층 아름다워질수 있을터인데.
하나하나의 건물들은 그런대로 수준급이지만 그들이 모여 이루어내는 도시의 공간은 예보다 다소 말끔해지고 고와졌을뿐, 허름했던 옛동네가 풍기던, 어딘가 아늑하고 내 분신과도 같이 마음에 와 닿는 그런곳은 온데 간데 없다. 생소하고 새치름해서 서민들은 마음 묻힐곳을 찾지 못하고 서성거리기조차 민망스럽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일을 내가 아름답다고 느낄때 비로소 아름다운 것이다. 무엇인가 아름다운것이 있어 그것을 대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다고 느껴야 한다는 신조가 도시경관의 아이러니를 빚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요즘 지어지는 높고 낮은 새로운 건축물들은 그들이 사회적 존재임을 저버리고, 이웃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등을 돌릴 뿐만아니라, 그 예술적 아름다움을 인지해줄 사람이 시민이라는 사실까지도 까맣게 잊고 있는듯 싶다. 도시의 건축물은 도시 공간의 한 구성요소가 되기보다는 강력한 자기주장을 통하여 도시공간의 지배자가 되려들고 군림하려든다. 마치 간판을 남보다 눈에 띄어 보이게 하겠다고 서로 경쟁해서 결국 서로가 서로를 눈에띄지 못하게 해버리고 혼란을 가져오는 꼴과도 같다.
어떤 건물이 도시속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이웃하는 건물이나 사람들과 의미를 상통시킬 수 있는 표현언어를 쓰는 일이 첫걸음이다.
좀 이상한 예가될지 모르지만 속칭 「달동네」의 집하나하나는 보잘것 없고 초라하고 때로 남루함을 넘어 더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런 낱개들이 산등성이에 옹기종기 어깨를 기대어 들어 앉아있는 모습은 마치 시골사투리로 더듬더듬 말하는것을 듣는것같다. 좀 서툴러서 안타깝지만 우리가 아는 말이고 체험이기에 우리가슴을 두드리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도시건축은 무엇보다 기성건물과 조화를 이루고 친근감을 갖게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달동네도 이웃과 어울리게 재구성한다면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강병기<한양대공대도시공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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