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해외파견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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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력이란 여러가지 의미로 평가될수 있다. 넓게는 문화적인 수준과 정치·외교역량까지를 포함시켜야 할것이나 우선 가친적인 산업생산과 무역의 규모, 기술의 수준등도 협의의 국력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국력을 이루는 물질과 정신적인 모든요소는 상호 보완적으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총체적인 국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기술인력의 양성과 배출도 국력의 한 단면이며 그 결과로 보아 마땅하다.
실제로 국력 신장에 병행하여 우수한 두뇌와 기술인력이 세계 곳곳 요소 요소에 진출하여 공적을 쌓고 나라의 이름을 빛내고 있음은 우리의 자랑이 아닐수 없다.
우리의료인이 대거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할 것이라는 소식도 이러한 맥락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정부는 최근 수도 리야드에 신축중인 병원(2개)의 운영을맡을 용역업체와 의사 2천명, 간호원 1만5백명, 의료기사 8천명등 2만5백명을 선발 파견해 줄것을 우리정부에 요청해 왔다. 정부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우리의료진이 진출한것은 지난77년 중동지역으로는 처음으로 간호원27명이 리야드중앙병원에 취업하고서 부터였다.
그 이후 간호원·물리치료사·임상병리사·방사선기사·조리사등 4백여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근면과 성실, 친절한 근무자세로 크게 호평을 받고 있고 더구나 그 실력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의 의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것은 결코 요즘의 일이 아니다. 6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탕술의 해외진출은 아프리카 제국을 비롯, 유럽·미주·동남아시아등 세계 도처 30여개 국가에 4천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낯선 풍토와 습속에 적응하면서 인술의 봉사에 전념하고 있다.
우리 의술이 선진국수준에서 크게 뒤지지 않고 있음은 최근의 임상결과로도 얼마든지 가까이에서 입증할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이번 사우디아라비아에 우리 의료진을 대거 파견하게 된 일은 켤코 의외의 요행이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이기도하다.
그러나 반드시 유의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들이 있다.
우리의 의료기술이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는만큼 이에 상응한 대우를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싸구려 상품을 대량으로 팔아넘기는것과 같은 의술덤핑의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하다.
국내의 「임금」수준보다 높다는 단순비교만으로 사우디아라비아측이 제시하는 대우에 만족할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과 비교되어야한다는 얘기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된 한국간호원들은 국내 임금의 2∼3배를 받고 있으며 의사의 경우는 2배 이상을 보장받으리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액수가 국내수준과의 평면적 비교로는 높은 수준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파견지의 악천후와 가족과의 별거, 자녀들의 양육·교육문제, 이국에서의 환경적응등 여러가지 문제들의 기복적인 고려는물론 우리병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대우도 요구해야 마당하다.
결코 단순한 액수만의 비교로는 무의미하다. 따라서 상대국 정부와 대우문제를 협의할 때 이러한 제반 문제를 철저히 따져 완벽한 보장을 못박아야 할 것이다. 대람 파견만을 내세워자랑할것이 아니라 파견조건의 질적인면이 충실해야한다.
또 한가지 지적해야할 일은 의료진의 순외파견이 일거에 대량으로 이루어진 결과 국내 의료계에 공백을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70년대말 중동건설 진출이 절정에 달했을 때 건설기술 인력이 모두 중동으로만 집중돼 국내 건설공사가 한때 부실했던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국위를 관만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자국민의 간병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외국진출에만 급급한다면 이것 또한 온당한 일은 못된다. 의료진의 해외파견이 국내 의료인력의 수급에 차질이없도록 배려하는 일도 빼놓을수 없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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