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과 호흡하는 영화」모색|20대의 모임 「서울 영화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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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민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영화의 길을 찾자』기성영화계의 구태의연한 탈을 벗어나 공부하고 땀흘리는 젊은 영화인들의 모임이 있다.「서울영화집단」. 서울대 「얄라성」영화연구회 출신 회원을 주축으로 12명의 20대 영화인들이 발족한 영화연구 모임이다. 이들은 그동안 첫 공동작품『아리랑 판놀이』등 8∼16m짜리 소형영화 8편을 만들어 연구하고, 최근엔 영화논문집『새로운 영화를 위하여』(학민사)를 펴내는 등 활발한 영화운동을 펴고 있다. 서울남영동 속칭 「부대고기집골목」으로 꺾어들어 1백m쯤 가다 보면 곧 무너져 내릴 듯한 낡은 2층 왜식건물이 나온다. 이 건물의 2층끝 3평 남짓한 방이 바로「서울영화집단」의 모임의 장. 벽지는 이곳 저곳이 떨어져나가 너덜거리고 비닐장판을 깐 바닥은 걸음을 옮길 적마다 출렁거리고 삐꺽거린다. 말이 방이지 창고보다 나을 게 없다.『이나마 구하는데 1년 남짓 걸렸어요. 회원 대부분이 직장도 없이 영화에만 미쳐있으니 어디 돈이 있어야죠 .번역료·원고료와 날품팔이까지 한 돈을 모아 지난해 10월에 겨우 마련했 습니다.』회원들은 매주 두 번씩 이 낡은 방에 모여 앉아 그동안 각자 공부한 것들을 토론하고 제작계획도 세 다. 토론이 열기를 띠다 보면 밤을 지새우기 일쑤고 회원중 1∼2명씩은 아예 이곳서 숙식을 하기도 한다. 끼니는 주로 라면이고 냉방의 잠자리는 낡은 이부자리 한 채가 전부다. 20대 청년들이 밤낮 없이 모여 앉아 영사기도 돌리고 토론을 벌이다보니 오해도 받게 마련. 한때 수상한 집단으로 신고돼 경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춥고 낡은 방에 모여 앉아 알아주지 않는 작업에 전념하는 이들이지만 우리 영화계의 현실과 나아가야 할 길을 보는 눈은 누구보다 날카롭고 애정은 누구보다 깊고 뜨겁다.『기성 영화제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줄기로, 보고 즐기고 나면 그뿐인「소비형 상업영화」를 양산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화가 나아가야 할 참다운 길이 아닙니다.』(송능한) 영화는 민중의 삶을 담아 공감하고 새로운 문제로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화에서 민중이 소외되어서는 안되며, 늘 그들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문화에서 소외된 소도시와 농촌의 민중을 찾아 그들의 삶을 담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같은 새 운동에서 8∼16m 소형영화제작 방법을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같은 영화운동 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현행 영화법이 개정되어야합니다. 영화제작권을 독점하고있는 제작자나 작가의식이 결여된 일부 감독등 기성영화인들은 민중을 영화로부터 소외시켰습니다. 70년대 이후 영화계의 침체는 그 근본 원인이 여기에도 있다고 봅니다.』(홍기선) 「서울영화집단」회원들은 기성영화계가 영화의 사명을 외면하고 상업적으로만 흘러왔다는 데 대해 공통된 비판의식을 갖고 있다. 82년 봄 첫 작품 『아리랑 판놀이』발표를 계기로 회원들이 더 모여들었고 이때 「서울영화 집단」을 발족했다. 이후 제작비(20여만원)가 적립되는대로 소형 영화 한 편 (20분내외)씩을 만들고 이를 놓고 토론과 연구를 계속해갔다. 이들은 이러한 운동이 같은 세대들의 공감을 얻어 좀더 확산되고 발전되면 우리나라 영화계의 장래는 조금이나마 제 길을 찾아들게 되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조심스레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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