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움에 홀렸나 … 클래식, 재즈에 물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클래식 음악가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이 처음으로 재즈를 연주한다. 다음달 3일 오후 8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함께 재즈 작품 10여 곡을 공연하는 크리스 리(피아노), 오닐, 윤한(피아노), 성민제(더블베이스·왼쪽부터). [사진 크레디아]

클래식 연주자들은 악보를 받아들고 고민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전 생애를 바치는 사람들이다. 악보를 경전처럼 여기고 작은 신호까지 잡아내보려 한다.

 이들에게 ‘헐렁한 악보’는 고역이다. 지시사항도 별로 없이 마음대로 하라는 음악을 만나면 불안해진다. 이게 바로 재즈다. 정교한 손놀림, 정확한 박자, 틀린 데 없는 음 같은 건 재즈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클래식 연주자들이 오래 연마해온 기술인데도 말이다. 대신 자신만의 해석과 감각, 즉 ‘느낌’이 중요하다. 알 듯 말 듯한 높은 장벽이다.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37)도 이 장벽 앞에 서 있다. 그는 다음달 3일 공연 ‘로맨티스트’에서 재즈 작품들을 연주한다. 클래식 연주에 주력하던 그에게 첫 재즈 무대다. 간혹 영화 음악, 뉴에이지 음악을 연주한 적은 있지만 재즈는 처음이다. 연주곡으로 존 콜트레인 ‘러시 라이프(Lush Life)’ 등을 골랐다. 더블베이스 연주자 성민제(25), 팝 피아니스트 윤한(32), 크리스 리(34)와 함께 냇 킹 콜의 ‘L.O.V.E’ 등도 들려준다.

 오닐 또한 “재즈의 어법 앞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클래식 연주와 가장 큰 차이는 융통성·흐트러짐이다. 재즈는 자발적인 내 방식대로 해야하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에서 이렇게 하면 틀렸다고 할 만한 것들이다.”

 클래식에서 재즈로, 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작곡가 박창수씨는 “클래식과 재즈는 화성 진행, 리듬 표현은 물론 연주할 때 근육 쓰는 법까지 다르기 때문에 쉽게 넘나들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같은 음표라도 다르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즈 넘보는 연주자들=그런데도 클래식 연주자들은 왜 자꾸 재즈에 기웃거릴까.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프리드리히 굴다(1930~2000)는 젊은 시절 재즈에 사로잡혔다. 재즈 피아니스트와 모차르트 협주곡 앨범을 내고, 즉흥연주도 했다. 종교음악 등에 정통한 독일 소프라노 엘리 아멜링(82)은 1990년 재즈 앨범에서 예상밖의 실력을 선보였다. 한국 클래식 음악의 아이콘이 된 손열음(29)도 최근 무대에 재즈 작품을 섞어 넣고 있다. 재즈 피아노를 따로 공부하며 익힌 실력이다.

 즉흥성·자유로움의 매력 때문이다. 오닐은 “사실 재즈의 자유로움은 클래식의 본래 모습이 아닌가 한다”고 설명했다. 모차르트·베토벤은 작곡가이자 연주자였다. 재즈처럼 마음대로 연주할 여지가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베토벤 이후 작곡가와 연주자가 분리됐다. 그런 점에서 “자유롭게 연주하는 재즈가 클래식 음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고 오닐은 말했다.

 클래식 연주자가 재즈 특유의 ‘감’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오닐은 “16세 때 존 콜트레인의 앨범을 처음 들었는데 아무 설명을 듣지 않고도 완전히 매료됐다. 뭔지는 설명할 수 없었는데 소리와 표현 모든 게 완벽했다”고 말했다. 어법이 다른 장르에서도 음악가의 본능은 발동했던 셈이다. 오닐은 “평소 1950년대 재즈 음악을 즐겨 듣는다. 루이 암스트롱, 데이브 브루벡을 듣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재즈에 빠져있었다는 뜻이다. 이제 이 시간을 딛고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를 넘어볼 참이다.

김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