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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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어의 「벤처」는 「모험」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서양사람들이 생각하는 「벤처」와 우리가 생각하는「모험」은 그 여운이 좀 다른것 같다.
우리는 「모험」이나 「투기」라면 먼저 위험부터 생각한다. 선뜻 나서기 보다는 주저하는 쪽이다. 새로운 일, 개척적인 일엔 그만큼 소극적이다.
그러나 미국사람들은 다르다. 우선 미식축구 하나만 보아도 미국인의 벤처 기질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장애나 위험을 피하지 않고 어떻게든 뚫고 나가려 한다. 때로는 무모해 보이지만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바로 그런 벤처정신이 「벤처」라는 말과 캐피틀(자본) 또는 비즈니스라는 말과의 합성을 가능하게 했다.
실제로 서양에선 「벤처러」라면 모험가보다는 투자가, 무역상인이라는 말로 통한다. 벌써 16세기부터 그렇게 쓰였다.
오늘의 미국에서 벤처 비즈니스가 가장 각광을 받는 기업분야인 것도 미국적 기질의 한 단면이다.
1970년대에 석유위기를 두차례나 겪으면서 미국인들은 과연 벤처정신을 발휘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애플사와 제넨테크사일 것이다.
유전공학 전문기업인 제넨테크사는 1978년8월 유전자 조립기술을 개발, 당뇨병치료에 중요한 인슐린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는데 성공했었다. 이 기술은 미국의 유삭제약회사에 의해 인체의약품으로 상품화해 FDA(미연방식품의약국)로부터 인가를 받아냈다.
그무렵 제넨테크사의 주가는 89달러(액면35달러)까지 치솟았었다. 벤처 비즈니스 못지않게 미국인들 사이의 벤처 열기도 짐작할수 있다.
애플사도 마찬가지다. 혁신적인 개인용 컴퓨터(퍼스콤)를 개발한 애플사는 지금도 세계의 컴퓨터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이들은 겨우 초라한 정도나 면한 중소기업으로 출발했다. 자본금이 그렇고, 인적 구성의 면면들 또한 수수한 사람들 몇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벤처 비즈니스맨은 눈에 보이지않는 섬광같은 것을 감추어 갖고 있다.
남다른 자신감과 적극성, 목표지향성, 행동형, 긴강과 외로움·암박감을 견디어 내는 강심장, 선택적 호기심, 경쟁적·공격적인 욕구, 그리고 독창성.
미국에선 이미 1960년대 「프런티어정신」의 기치와 함께 벤처 비즈니스 1차붐이 있었다. 80년대의 붐은 「석유위기」의 전화위복이다.
지금 미국엔 7백여개의 벤처 캐피틀 회사가 59만여개에 달하는 기술집약형 신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은 일반 중소기업에 비해 10배의 성장률과 11배의 매출신장률을 기록했다. 그로인한 새 일자리도 3백만명이나 늘었다.
친선을 안으로 돌려보면 우리도 못할 것이 없다. 우리 민족성의 어딘가엔 그런 벤처정신이 숨쉬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역사가 증언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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