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인터뷰] "일본 최고 된 뒤 빅리그 꼭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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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인터뷰가 진행된 이승엽의 호텔방. 코나미컵 출전차 도쿄에 와있는 그의 침대 위 노트북 컴퓨터에서 박남정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유리창에 그린 안녕'. 신나는 리듬을 따라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는 문득, "제가 이렇게 삽니다"라고 했다. 박남정이 어때서? 한때 '마음은 박남정, 몸은 누구'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젊음의 상징 아니었나. 박남정의 노래는 여전히 흥에 겨웠고 이승엽도 여전히 젊고 건강했다.

-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내년에 어디서 야구를 할 건지다. 진로가 어딘가. 롯데를 떠날 수도 있나.

"이번 코나미컵 대회 마지막 날(13일) 진로를 밝히겠다. 일본에 와서 배웠다. 여기 사람들은 공식적인 절차를 중요시한다. 공개적으로 밝힐 것이다. 신중하게 생각했고 결정했다.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에이전트도 그날 소개하겠다."

-메이저 리그 진출과 관련된 소식이 없다. 2년 전의 그 꿈은 이제 포기한 건가.

"아니다. 언젠간 그 무대에 갈 것이다. 올해는 오라는 팀도 없었고, 준비도 안 됐다. 거기 가려면 수비가 중요하다. 수비 없이 메이저 리그 진출은 무리다. 일본에서 정상급 선수로 인정받은 뒤 꼭 도전할 것이다. 2년 전 협상을 도와줬던 존 킴에게도 그렇게 기다리라고 말했다. LA 다저스와의 협상 때는 너무 실망스러운 조건이었다. 부끄러워서 밝히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때는 정말 계약할 수가 없었다."

-2년에 걸쳐 경험한 일본 야구는 어떤 점이 한국과 다른가.

"심하게 말해서 일본야구는 한국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두 갈래 길이 있는데 한국이 왼쪽으로 가면 일본은 오른쪽으로 간다고 해도 좋다. 5-0으로 앞선 8회에 번트를 댄다고 치자. 한국에서는 곧바로 위협구가 날아든다. 그러나 일본은 아니다. 다 그렇게 한다. 이기기 위해서다."

-일본투수들이 왜 상대하기가 더 힘든가.

"나에 대한 데이터가 있고, 그 데이터를 정확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그들은 포크볼만 계속 던진다. 내가 하나를 골라 2-1이 되면 또 포크볼을 던진다. 파울이 된다. 그래도 또 던진다. 또 고르면 2-2, 그리고 또 던져 파울, 뭐 이런 식이다. 그들은 내가 투 스트라이크 이후 포크볼에 약하다는 걸 알고, 믿는다. 내가 헛스윙할 때까지 던진다."

-올해 재기엔 성공했지만 타율(0.266)이 한국에 비해서 너무 낮다.

"여기서는 타율관리가 안 된다. 한국에서는 몰아치기가 가능하지만 여기서는 선발이 무너져도 그다음 투수에게 안타를 때리기 어렵다. 패전처리 투수도 죽자고 던지고, 선수층도 두텁다. 선발 상대로 하나 때리고 투수 바뀌어서 '야, 이제 타율 좀 올려볼까'하면 그 다음 투수가 더 때리기 어려울 때가 많다."

-재기에 김성근 전 LG감독(지바 롯데 코디네이터)의 도움이 컸나.

"김 감독님이 정말 큰 힘이 되어주셨다. 특히 정신적인 도움이 컸다. 게임이 안 풀리거나 타격감을 찾기 힘들 때, 내가 옆길로 빠지려고 할 때마다 감독님이 지켜줬고, 바로잡아 줬다."

-좌절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마음가짐이 어땠나.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야구는 실패했지만 인생은 성공했다고. 야구는 못했지만 인간으로서 배운 게 많았다는 얘기다. 그때 정말 어려웠다. 일주일씩 경기 못 나가고 할 때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많았다. 일본 야구를 쉽게 생각한 건 아닌데 정말 풀리지 않았다. 난 지금도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누구든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왜 게임에 못 뛰느냐고 물으면 '못하니까'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뜨거운 게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독하게 훈련했다."

-내년에 세계야구 국가대항전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열린다. 각오나 느낌은.

"한국의 준비가 너무 느긋한 게 아닌가 싶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선수들은 모르고 있다. 아테네올림픽 예선 때도 그러다가 대만에 잡혔다. 이번에도 대만이 쉬운 팀은 아닌 것 같다."

-31년 만에 팀이 우승한 일본 시리즈에서 활약이 컸다. 그 이후에 표정이나 몸짓이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다.

"일본 시리즈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다. 소프트뱅크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너무 못해서 의기소침했고, 일본 시리즈 1, 2차전 선발이 모두 왼손이라서 기대 안 했다. 그런데 게임 전날 김성근 감독님이 1차전에 나갈지 모른다고 하셨다. 왼손 이가와가 왼손타자에게 오히려 약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준비했다. 그리고 1, 2차전 계속 홈런을 때렸다. 4차전은 정말 기억에 남는다. 마음껏 휘둘렀다."

도쿄=이태일 기자

*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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