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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3년 개혁속도 내고 수첩 밖 인물에도 눈 돌리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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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3년차인 올 상반기가 구조 개혁을 통해 경제를 살릴 유일한 시기다.” “임기 내 창조경제의 결실을 맺으려 서두르면 안 된다.” “수첩 속 인물이 아니라, 잘 모르더라도 기관 성격에 맞는 인사를 뽑아야 한다.”

25일 집권 2주년을 맞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의 조언과 쓴소리가 쏟아졌다. 중앙SUNDAY가 지난주 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설문조사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85명의 새누리당 초선 의원 중 63명(74%)이 설문에 참가했다. 19대 국회 새누리당 초선 의원들은 2012년 5월 30일 임기가 시작된 뒤 1년이 채 안 돼 박근혜 정권 출범을 맞았고 의정활동 기간 대부분을 현 정부와 함께했다.
우선 박 대통령에게 남은 임기 3년 동안 ‘올해부터 이것만은 집중해 성과를 내달라’고 주문하고 싶은 분야를 물었다. 가장 많은 28명이 ‘경제 활성화’를 들었다. 구체적으로 가장 시급한 소망 과제 하나를 꼽아 보라는 질문에 해법들이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졌다.

“법인세 증세가 논의되고 있는데 증세를 안 한다면 확실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 그래야 외자나 국내 자본이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말만 오가는 불확실성이 큰 걸림돌이다.”(김용남) “경제 살리기보다 서민 살리기를 해야 한다. GDP(국내총생산)는 이미 높다. 삶의 질을 높여 서민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박성호) “내수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은 중산층 이하의 가처분소득을 갉아먹는 주택과 보육비 부담이다. 정부와 청와대가 이에 대한 각별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내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김상훈) “국민 가계소득이 증가하지 않는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대기업은 사내 유보금을 풀어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조세정책을 개혁해 많이 버는 사람이 지금보다 세금을 더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덜 내게 해야 한다.”(김희국) “유동성이 너무 부족해 기업들이 투자를 꺼린다. 대기업 총수 사면을 통해서라도 동맥경화처럼 막힌 돈 흐름을 풀어야 한다.”(홍지만)

응답자 중 14명은 각종 연금과 규제 개혁을 꼽았다. “각종 규제를 20%만 줄이면 경제성장률이 1~2% 올라간다.”(이노근) “과도한 수도권 규제로 기업과 대학들이 투자·확장을 못하고 있다. 공기업과 공무원이 다 지방으로 옮겼는데 수도권 규제가 무슨 필요가 있나.”(이우현) “우리 당이 총선에 참패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공무원·사학·군인연금 개혁 등 꼭 필요한 조치는 눈치 보지 말고 한번에 밀어붙여야 한다.”(홍철호)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 역시 많았다. “참모의 능력과 상관없이 그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야 한다. 일반 국민과의 소통은 한계가 있으니 참모들과라도 활발히 소통하라.”(길정우) “부처들이 모두 각자도생식으로 정책을 펴다 보니 갈등이 생기고 조율이 안 된다. 국민에겐 이런 모습이 소통이 안 되는 걸로 보인다. 총리가 법률상 권한인 통할권과 심사조정권을 충분히 활용해 조정하고 집행해야 한다.”(김도읍)
문대성 의원은 복지 문제와 관련해 “증세 없는 복지는 충분히 가능하다”며 “부처 간 유사사업 중복이 엄청나게 많더라. 이들을 조율해 일원화한다면 정부 예산의 20~25%에 달하는 눈먼 돈을 복지에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강산 관광 재개하고 5·24 풀어야”

박근혜 정부에 참여한 핵심 인사들에 대한 주문도 있었다. 박창식 의원은 “3년차부턴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분들이 막장 드라마를 찍는다는 정도의 각오로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어정쩡하게 1년 할 바엔 7~8개월이라도 과감하게 하고 나가란 말이다. 가을에 열매를 따려면 봄에 씨를 뿌려야 하는데 수석·장관들은 자기들이 열매를 못 딸 것이니까 씨를 뿌리려 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남북 교류 확대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통일의 실천적 계획을 짜기 위해선 (남북 교역을 중단시킨) 5·24 조치를 해제 또는 완화해 인적·물적 왕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이완영) “경제 협력에서부터 풀어가야 한다. 우선 금강산 관광 재개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염동열)
박근혜 정부가 핵심 어젠다로 내세우고 있는 창조경제에 관한 조언도 나왔다. “우리나라는 반도체·스마트폰·자동차 등 훌륭한 악기들을 만들어 왔고 연주자도 많다. 창조경제는 이들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교향곡인데 지금은 악보도 지휘자도 없다. 부처를 아울러 협업과 희생을 이끌어 내는 악보를 만드는 기획이 시급하다.”(전하진) 새누리당 대변인을 맡고 있는 권은희 의원은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가 국립대·특성화학교 등과 연계해 클러스터를 구성, 그 지역의 특화된 산업 위주로 인력을 양성하고 연구개발을 해 나가야 한다”며 “지금처럼 따로따로 운영돼 지역과 유리되면 정권이 끝난 뒤 흐지부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덕광 의원은 “국민에게 약속한 원칙을 변함없이 지켜 나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가장 원칙과 소신이 있는 정부였다는 평가를 받아 달라”고 주문했다.

익명을 전제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주문해 봤다. 주로 인사 문제에 관한 답변이 많았다. “(대통령이) 주변의 편향된 보고만을 받고 의사 결정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많다. 민생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장차관들의 이해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정책이 관료적으로 결정된다.” “장관이나 수석 자리에 공직자·교수 출신이 너무 많다. 경제를 아는 전문 경영인들이 입각해야 한다.” “대통령 비서실장부터 60~70대가 다 포진해 있는데 이완구 총리처럼 부패·탈법·불법에 찌든 세대가 바로 그 세대다. (인재 풀을) 한 세대만 낮춰도 상대적으로 깨끗한 세대다.” “TK(대구·경북) 중심의 권력 운영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의사 결정 핵심 라인이 TK면 가치 배분 과정에서 비TK들이 소외감을 느낀다.” “대통령이 사람을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다. 그래서 주변에서 볼 때 아닌 사람도 계속 공직에 남아 있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 억울해도 본인이 알아서 그만둬야 한다.”

정책 수행에 대한 고언도 이어졌다. “더 이상 만기친람(萬機親覽) 하려 해선 안 된다.” “국민 소득은 올라가지 않는데 소득이 올라가는 것처럼 허장성세(虛張聲勢) 하면 안 된다.” “창조경제를 하려면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데 제도는 추격형에 머물면서 선도형 결과물을 내려 하니 전시성 이슈에만 집착한다. 결국 혁신이니 녹색성장처럼 이전 정부 정책이 이름만 바뀌어 반복된다.”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100만이 넘는 청년 실업 해소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현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과거 정부와 다를 게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한다.”

한 서울 지역 의원은 “일관성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겨울엔 두꺼운 옷을 입고 여름엔 얇은 옷을 입어야 하듯 시대 상황에 맞게 변해야 한다”며 정책의 융통성을 주문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옹호와 격려도 없지 않았다. “대통령의 철학과 방향은 분명하다. 밑에서 움직이는 100만 명의 정부 조직이 변화에 자발적으로 동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개혁을 밀고 가야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방향을 틀 수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경제정책을 추진하려 해도 국회가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며 뒷받침하지 못했다. 국제 경기도 침체된 상황에서 대통령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울 순 없다.” “대통령이 위법을 했나, 정책 실패를 했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공약을 다 이행하지 않는다. 우리는 박 대통령을 너무 흔들어 젖히고 코너로 몰아세운다.”

“소통 문제는 받아 적기만 하는 각료들 탓”

박근혜 정부가 잘한 분야를 물었다. 3분의 2가 넘는 47명이 외교 분야(복수 선택 포함)를 꼽았다. “외국에 나가 보면 정말로 박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중국에선 특히 더하더라. 솔직히 놀랐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류 산업의 동력을 만들어 준 것은 다른 정부에 비해 월등하다. 여성 대통령이라서 외국에서 더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다.”

29명은 일관성 있는 자세를 들었다. “대북 관계에서 북한의 남남 갈등 전략에 말려들지 않았고 사회지도층에 대한 사면·복권을 남발하지 않았다”는 점을 높이 산 의견들이었다.

잘못한 분야에 대한 물음에선 47명이 인사를, 25명이 소통 문제를 지적했다. “대통령이 가려는 방향을 제대로 끌고 갈 인재가 없어 그르친 일이 많았다.” “학계 쪽에서 장관·수석을 많이 뽑았는데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다 보니 받아쓰기밖에 할 줄 몰랐다. 한마디로 초창기 멤버들이 허접스러웠다.”

이들에게 박근혜 정부 2년간 평가에 대해 몇 점을 줄지 물었다. 1(매우 못했다)∼5(매우 잘했다) 사이 5점 척도로 묻는 문항에서 응답자 61명 평균은 3.43이었다. 보통(3)과 약간 잘했다(4) 사이 수준이었다. 응답자 중 30명이 3점을 줬다. 4명은 최고점인 5점을, 3명은 2점을 매겼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에 대해 “여당 초선 의원의 경우 지난 총선 때 비대위원장이었던 박 대통령으로부터 공천을 받은 사람들이어서 냉정한 평가보다는 대통령의 잘못이 자기 잘못이란 관념이 강할 것”이라며 “이들의 평가가 이 정도라면 사실상 못했다는 반응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충형·천권필 기자, 박종화 인턴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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