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백수로 살고픈 인문학자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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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진중권의 여자 오디세이- 요즘 제일 잘나가는 인문학자 고미숙을 만났다.

요즘 제일 잘나가는 인문학자 고미숙에게 ‘주부라서’ ‘백수라서’ ‘학교를 안 다녀서’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지성의 문턱이 사라진 이 시대에 제 삶에 대한 탐구는 절박한 생존의 토대. 그녀는 살기 위해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공부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감이당’. 서울 중구 필동이라는데, 서울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외진 곳이었다. 먼저 ‘감이당’의 뜻부터 물었다. “건곤감리 할 때 ‘감’(坎)이에요. 주역 8괘 중 감, 물을 의미합니다. 물은 존재와 삶, 자연과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지혜를 상징하죠. 그러나 처음부터 의미를 부여해 이름을 지은 건 아니에요. 이름을 지은 다음 한자를 찾아 붙인 거죠.” 방 안에서는 학습 모임이 있나 보다. 응접실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쪽에 밥솥과 식기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평소에는 식당으로 사용되는 곳인듯하다.

이곳 ‘감이당’을 만든 고미숙은 작가이면서 고전 평론가이자 요즘 제일 잘나가는 인문학자다. 책 작업 외에 다양한 곳에서 강연을 하고, 여러 신문과 잡지에 일상과 고전, 인문학을 두루 섞은 이야기들을 칼럼으로 기고하는 중. 고전 문학을 전공했고, 동양 철학을 공부한 그녀는 역학에 까지 해박하다는 독특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음양의 질서를 바탕으로 우주 만물을 해석하는 재주를 가진 고전 학자의 이야기 곳곳에는 자연스레 우주와 몸과 사주팔자가 등장한다.

Q :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아버지가 광부셨어요. 강원도 함백, 작고 조용한 탄광촌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다 떠나고 숲으로 복원됐어요. 광부가 되려고 이곳에 온 아버지가 엄마랑 눈이 맞아 저를 만든 거죠. 혼전 임신으로. 아버지는 파독 광부가 되어 돈을 좀 버셨어요. 강원도에선 큰 재산이었는데, 엄마가 보증을 잘못 서서 다 날렸죠. 독일 갔다 오신 후, 거기서 밑바닥 직급부터 올라가 관리자로 정년까지 하셨고요. 중학교까지 거기서 지냈어요.

Q : 탄광촌 시절의 분위기가 궁금해요 야생적으로 살아서 그 시간들이 선명하게 기억나요. 엄청 몸을 쓰고 놀았어요. 중학교 때는 3공(제3공화국) 절정기라 학교 가서 황무지 개간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억압적인데 신체에는 정말 잘 맞았어요. 너무 외진 곳이라 선생님들이 발령을 받아도 부임을 거부하는 바람에 정규 수업이 잘 안 됐죠. 영어도 국사 선생님한테 배웠어요. 수업이 안 되니 그 시간에 삽질, 곡괭이질을 시켰죠. 학교가 두세 시면 끝나요. TV도 없던 시절이니 집에 와도 할 일이 없고, 그래서 운동장에 가서 해가 질 때까지 놀았죠.

Q : 대학에선 독문학을 전공했죠 그건 제 청춘의 흑역사죠. 제 인생에 아무것도 안 한 시기나 마찬가지예요. 원래 동양 문화를 공부하려고 했는데, 중문과 선생님들이 자기 과로 오는 것을 그다지 바라지 않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문과는 가기 싫었고, 이거 저거 빼고 나니 독문과밖에 없었어요.

Q :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당시는 학생 운동의 전성기였는데 겁도 많은 데다가, 운동권의 주장도 충분히 공감이 되지가 않았어요. 그때는 제가 종교적인 사색을 많이 할 때라서.

Q : 중문학을 하려고 했다면서 왜 국문과 대학원에 지원했나요 대학 때는 서양문학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4학년 때 들은 강의 하나 때문에 바꿨어요. 수업 시간에 ‘춘향전’ 등 고전 문학에 관한 강의를 듣는데, ‘수업을 저렇게 밀도 높게 하는 교수가 있구나’ 했어요. 충격이었어요. 김흥규 선생님. 당시엔 상당히 유명한『창작과 비평』에서 배출한 신진 평론가였죠.

Q : 당시 마르크스주의의 위세가 막강했을 텐데요 그때는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거 없이 사유하는 게 불가능했죠. 마르크스는 박사 과정에 가서 읽었지만, 고전 문학과는 거리가 멀잖아요. 고전 문학을 갖고 어떻게 혁명에 동참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사설시조의 계급성, 판소리의 민중성. 이런 논문도 썼죠.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지만, 나름 진정성이 있었어요. 운동이나 정치를 할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혁명을 하면 삶이 어떻게 바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모든 게 다 끝났을 때 공동체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죠.

Q : 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는 디지털 시대에 문자 문화의 수호자들이 중세의 수도승을 닮아갈 거라 말합니다. 대학이 취업 준비기관으로 전락한 시대에 깊은 인문학적 사유는 외려 ‘수유너머’나 ‘감이당’ 같은 대학 밖의 수도원(?)에서 담당하는 것 같아요 그걸 시작했을 때는 취업이 잘 안 되던 시절이었어요. 교수가 됐으면 대학 안에서 했겠죠. 사실 먹고사는 문제만은 아니었어요. 누굴 만나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세미나를 할 수가 없고, 재야 연구 단체는 말만 진보지 너무 경직돼 지식이 생산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어요. 결국 직접 공부 네트워크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갖고 있던 약간의 돈으로 세미나실을 만들었는데, 의외로 많이들 왔어요. 박사 실업자가 많았던 거죠

고미숙은… 고전 평론가. 강원도 작은 탄광촌에서 나고 자라 춘천여고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독문학을,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인문학 연구소 ‘수유너머’에서 연구 활동을 했었고, 지금은 인문의역학연구소 ‘감이당’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는『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등이 있다.

“몸을 이해하면 사람이 보입니다”
Q : 갑자기 역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게 흥미롭네요 공동체를 하다 보면 이론적으로는 싸울 게 없어요. 하지만 습관이 다르고 감정의 회로가 다르면 서로 부딪쳐요. 그럴 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논리로 따져도 안 되고. 그것을 보면서 감정의 통제가 안 되는 지점이 있고 그게 신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죠. 명리학에 따르면 몸의 생리적 불균형이 정서적 불균형을 낳고 그게 관계의 갈등을 부른대요. 이런 건 서양 철학이나 과학에선 배울 수 없는 것이었죠.

Q : 서구 철학에서는 이성으로 신체와 감정을 지배하라고 가르치죠 동양 의학에서는 그걸 반생명적이라고 봐요. 양생(養生)은 그런 게 아니에요. 욕망을 드러내야 해요. 감정을 억누르면 결국은 변태나 테러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어요. 명리학은 감정에 대한 객관적 지표를 제공해줘요. ‘저이는 오장육부가 어떻고 올해 운이 어때서 저런 식으로 행동한다.’ 그렇게 이해하면 감정이 상하지 않아요.

Q : 사실 서구에서도 르네상스 때까지는 대우주와 인체라는 소우주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었잖아요 서양에서는 그 지식들이 파편적으로만 존재했죠. 체계화가 안 됐어요. 점성술도 마찬가지예요. 체계가 없어요. 이 별자리 사람들이 왜 이런 행동 패턴를 보이는지 설명해주는 원리가 없어요. 음양 체계는 현대 과학을 통해 더 잘 이해가 돼요. 오행이라는 게 힘의 문제거든요. 음양오행의 상승 상극이라고 하는 리듬과 강도. 그게 우주를 끌어가는 힘이라면, 그 매트릭스 안에 사는 우리도 그 힘을 내재화한다는 거죠. 여기서 의학과 운명학이 만나는데, 그 분석과 나의 상황이 맞으면 깜짝 놀라게 돼요.

Q : 결혼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결혼이라는 게 직업을 고정시키고 애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본주의가 선택한 제도죠. 그래도 지금 많이 해체되지 않았나요? 1인 가구가 많아졌잖아요. 제도를 바꾸기 전에 이미 일상 자체에서 여러 가족 형태가 나오고 있는 거죠.

Q : 서구의 경우 지금 거의 두 사람 중 하나는 이혼 상태잖아요 그게 더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명리학적으로 한 번 결혼해 끝까지 사는 건 특이한 팔자예요. 10년만 살아도 정말 오래 같이 산 거죠. 명리학은 에로스적 관계가 끝나면 같이 살아도 부부 관계는 끝났다고 말해요. 10년마다 배우자 운도 변하거든요.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진 두 행성이 부딪혀 각자의 속도를 만들어내는데, 그 시간성을 ‘시절인연’이라고 해요. 그 인연이 끝나면 굉장히 당혹해하죠. ‘이렇게 사랑하고 헌신했는데 저 사람은 나한테 왜 이럴까?’ 이때 동양의 역학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줘요. 보고 나면 많이 풀리고 자유로워져요. 무게가 사라지면 새로운 인연을 만나거나 관계를 만들어갈 때 훨씬 가볍죠.

Q : 대안적 성도덕은 무엇일까요 ‘호모 에로스’ 강의할 때 늘 이렇게 말하죠.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점검해보라. 그게 용납이 안 된다면 그건 어떻게든 대가를 주고받는 교환에 불과하다.” 내가 이만큼 줬으니 이만큼 해주세요, 이렇게 시작하면 감정의 블랙홀 말고는 없어요. ‘나는 도저히 용서가 안 돼’, 이건 상대를 파괴하고 나를 파괴할 뿐이에요. 일부일처제 외에 자본주의의 상품 화폐 경제도 영혼을 잠식하는 요인이죠. 흔히 능력을 키워서 연애하자고 하는데, 능력이 커질수록 연애할 기회는 줄어들어요. 저는 여고생들한테 이렇게 얘기해요. 대학 가서 좋은 직업 얻어 멋진 남자 만나 연애하고 결혼할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진짜로 좋은 연애, 좋은 결혼을 하려면 고등학교 중퇴하고 당장 동거를 하라고. 저는 이런 게 정치의 영역이 될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정치는 분배 말고는 없어요. 삶 자체의 리듬, 정서적 리듬의 영역이 정치 안에 안 들어온다는 게 신기해요.

Q : 결혼 경험은요 결혼 생활도 했었어요. 20대 초기에 했는데 ‘이 맛에 결혼을 하는구나’ 할 정도로 달콤했어요. 그러다가 6년 전쯤에 ‘이제 됐다, 진도가 끝났다’는 느낌이 몸 전체로 왔어요. 나중에 사주 명리학을 보니까 대운이 바뀔 때더라고요. 연애 시절부터 20년을 함께 지냈는데, ‘이제 헤어져야겠다’고 하니 남편도 받아들였어요.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 몸이 서로 알았어요.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할 말이 있다고 운을 떼었더니 엄마가 대뜸 “너희 헤어지려고 그러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뒤로 남편을 안 만났어요. 지금은 다른 여자랑 행복하게 잘 살아요. 내가 안 헤어져 줬으면 어쩔 뻔했어(웃음)?

Q : 연애는 안 하나요 연애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어요. 폐경기가 되면 몸이 바뀌고 욕망의 벡터가 바뀌어요. 자연이 선택을 한 거겠죠. 사람이 사람으로 보인다, 이건 너무나 큰 자유의 공간이에요. 그동안 남녀 이분법 안의 여성으로 살았다는 것을 폐경하고 나서 알았어요. 폐경은 축복의 시간이에요. 감정 조율이 훨씬 쉬워졌어요. 사람이 투명하게 느껴져요. 물론 인연이 오면 연애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할 거예요. 그래야 가을을 사는 재미가 있지.

진중권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탄탄한 논리, 정확한 근거, 조롱과 비아냥거림, 풍자와 위트를 뒤섞은 신랄한 문장 등 100가지 무기로 현상을 해석하는 우리나라 톱 논객으로 꼽힌다. 그러면서 비행기 조종이 취미이고, 고양이 루비를 애지중지하는 감성 로맨티스트이기도 하다. 여성중앙에서는 ‘시대의 여자’들을 만나 섹시한 인터뷰를 펼쳐보인다. 날 선 독설과 ‘루비 애비’ 특유의 감성을 넘나드는 인간 해석이 관전 포인트다.

“꼭 뭐가 되고 싶어야 합니까?”
Q : 낭송 시리즈를 내놓았던데, 중세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책을 소리 내어 읽었죠. 워낙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하지만 인쇄술의 등장으로 누구나 책을 갖게 되면서, 혼자서 소리 없이 읽는 묵독의 문화가 시작됐어요. 그런데 지금 왜 다시 낭독의 문화를 끄집어낸 거죠 신체성 때문입니다.『공부의 달인』이라는 책을 쓰면서 ‘몸과 지식이 섞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다가 ‘그러려면 소리로 접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죠.『논어』를 다 이해하고 읽으려면 몇 살에 읽어야겠어요? 하지만 낭송을 하면 세 살짜리도 읽을 수 있어요. 낭송 오디션을 했을 때 여기 꽉 찼었거든요. ‘대중 지성’이랄까? 엘리트와 대중이 구별되는 시대는 끝났어요. 지식이란 접속해서 흐름이 형성이 되는 어떤 것이지, 누가 더 많이 알아 갖다 주는 게 아니에요. 낭송을 하면 머리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학벌 높은 사람 낮은 사람 고루 섞여요. 낭송은 모두가 하고, 활용은 각자 알아서 하면 되죠. 뛰어난 사람은 그걸로 글을 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더디게 그걸 즐기는 걸로 만족하겠죠.

Q : 낭송과 신체성과는 무슨 관계가 있나요 동양학은 낭송 중심이에요. 사서삼경은 말할 것도 없고, 남방 불교에서는 경전을 20년에 걸쳐 암송한대요. 이런 문화가 있는 게 결국 소리와 오장육부 주파수의 문제예요. 과학 공부를 했더니, 우주에는 공명이 있대요. 대기권의 주파수 같은 게 있는데, 히말라야 불교에서 내는 ‘옴’ 같은 소리가 그것과 공명을 하는 거라고 해요. 히말라야가 모든 종교인의 성지가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죠. 그래서 ‘낭송이 양생에도 좋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낭송은 몸에 대한 탐구에서 나온 새로운 공부법이에요. 요즘 애들을 보면 목소리가 기어들어가요. 1980년대는 사람들 앞에서 목청 높이는 시대였는데, 요즘은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는 애들이 거의 없어요. 학교 교육 자체가 신체를 완전히 소외시키는 방식이죠. 지난해 동양사상 수업에서 푸코, 들뢰즈를 읽는데 아줌마들이 푸코에 대해 한 페이지를 다 암송해요. 경이로웠어요. 중학생 열댓 명도 나왔는데 다 합친 목소리가 형편없었어요. 그냥 시험 보듯이 외우는 거죠. 걔들은 몸을 바꿔야 해요. 안 그러면 정보 더미 속에 익사하게 돼요.

Q : 마샬 맥루언은 묵독을 통해 읽기가 시각화함으로써 감각들 사이에 불균형이 생겼는데 TV나 라디오 같은 소리 나는 전자 매체가 나타나 다시 감각의 균형을 바로잡아줄 거라 믿었죠. 디지털 미디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디지털 미디어는 신체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져요. 스티브 잡스도 자기 아이들한테는 책을 읽어주었다잖아요. 미디어를 거부할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그 안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럼 신체가 가진 생명력을 어떻게 선택하고 활용할까, 그게 제 고민이죠. 저 벽에 걸린 세계 지도에 적혀 있는 게 제 프로그램이에요. 낭송하고 길 위의 여행을 떠나는 거죠. 지난해부터 하게 된 거예요. 보통 관광을 하면 소비만 하다 무력한 신체로 돌아와요. 그래서 저는 이곳 아이들에게 ‘고전을 읽고 거길 가라, 그리고 너 자신의 언어로 글을 쓰라’고 했지요. 아이들은 국경을 넘는 거부감이 없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너무 무력해요. 부모와 제도의 과보호 때문이죠. 그러다가 국경을 딱 넘으면 몸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해요. 그때 스마트폰이 비로소 유용하죠.

Q : 몇몇 아이들이 그렇게 사는 게 이 사회에 대한 저항이 될까요 저항은 아니고, 여기 오는 건 백수가 되고 싶은 애들이에요. 무엇이 되려고 기획하는 게 무의미함을 동양 사상에서 배웠어요.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안 미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만들기 위해 사는 게 아니잖아요. 굳이 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잘 살 수 있어요. 아이들이 상처 없이 제 존재를 완전히 자립적으로 살아내는 것. 전 그거 말고는 원하는 게 없어요. 여행에서 돌아온 애들이 책을 내면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고 해요. 아이들이 책을 내서 지성의 향연에 자발적으로 접속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Q : 도피주의가 아닐까요? 억압적 도덕이나 법률도 집단적 행동이나 정치적 결정으로 개선할 수 있잖아요 나를 얼마나 비우고 포기하느냐가 핵심이지, 그것 없이는 결국 정치 집단이 될 거예요. 1980년대에는 혁명이 일어나면 많은 문제가 풀릴 거라 생각했어요. 사회 시스템의 변화에 기대를 많이 걸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 기대를 버렸어요. 전교조가 합법화되면 보충 수업, 자율 학습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지금 더 많아졌잖아요. 이제는 공부 못하는 애들까지 다 해야 해요. 그런데 이런 걸 제도의 ‘개선’이라고 하더군요.

Q :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변화를 꾀하는 노력과는 괴리가 있어 보입니다. 정치를 피해가는 것은 결국 개인주의적인 양생법이 아닌가요 왜 개인주의죠? 그러면 왜 제가 공동체를 하고 네트워크를 만들까요? 양생은 개인이 고립적으로 할 수 없어요. 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소통, 신체와의 소통이고, 양생을 하려면 자연 천지만물과 소통해야 해요. 사람과의 소통은 말할 것도 없고요. 요즘 정치는 연예와 별 차이가 없잖아요. 종편에 나가 몇 마디 떠든다고 뭐가 바뀌나요? 여러 길이 있는데, 선택 안 한 사람에게 정치를 강요하는 건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당신의 삶에 개입해서 끌어주겠어’ 하던 시대는 지났죠. 제도를 통해 좋은 세상이 된다는 말을 이제는 믿지 않아요.

Q : 연구하면서 가장 애착이 갔던 인물이 있다면요 당연히 연암이죠. ‘고추장 보냈는데 왜 맛있는지 맛없는지 말이 없냐’고 짜증 내는 편지를 할 수 있는 양반이 또 있을까요. 그 밖에는 루신. 그는 허투루 하는 말이 없어요. 격변하는 중국 사회에서 온갖 이념과 싸우면서 자기가 믿지 않는 말은 절대 안 해요. 그렇게 중국인의 뿌리 깊은 근성과 싸웠죠. 대장정할 때도 공산당과 연대했지만, 그 이념은 안 믿었어요. ‘저거 뻥이다. 혁명 일어나면 다 부자가 될 것처럼 말한다’고. 당국의 감시를 피해 상하이까지 도망갔다가 거기서 폐병으로 죽었어요. 그가 죽은 후 마오쩌둥이 그를 혁명 문학의 아버지로 세워버렸어요. 그래서 문화 혁명 때는 마오와 루신만 인용이 됐죠. 루신을 그가 가장 원하지 않았을 방식으로 써먹은 겁니다. 최근에는 그가 중국 사회를 너무 우울하게 묘사했다 해서 앞으로 중국 교과서에서 뺀대요. 그 소식을 듣고 드디어 루신이 해방되는구나 생각했어요. 루신은 절대로 중국에서는 제대로 해석될 수가 없어요.

Q :『낭송 열하일기』『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등 연암에 관한 책을 여러 편 내기도 했죠 우연히『열하일기』를 읽다가 들뢰즈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어요. 굳이 목표에 도달하지 않으려 하는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들. 리듬을 타면서 탈영토화하는 힘. 연암 이전에도 중국 여행기는 많았어요. 대부분 자기가 본 새로운 것을 쭉 나열하는 식이었죠. 그런데 이 사람은 6개월 동안이 온전히 자기 삶이었어요. 공식 루트가 아니라 옆으로 새서 자기가 정말 보고 싶었던 것을 봐요. 그 과정에서 부딪히고 변형이 일어나요. 자기가 계속 바뀌는 거죠. 가령 청나라 문명이 너무 세련되고 잘된 걸 보고 질투심이 폭발해요. 우리가 무시하는 오랑캐들이 정갈하게 잘 사는데, 우리는 중화를 자처하면서도 꼴이 말이 아니다. 이런 걸 하나도 숨기지 않고 드러내요.

Q : 지금 쓰고 있는 책은 뭔가요 ‘로드 클래식’이요.『서유기』『돈키호테』『조르바』
『허클베리 핀』『걸리버 여행기』등 여행기의 고전들에 관한 글을『월간중앙』에 연재했어요. 5월쯤 책으로 묶여 나오겠죠. 그다음에는 그 책들에 나오는 곳으로 직접 여행을 해서 ‘로드클래식2’를 쓸 예정입니다. 여행기 리라이팅인 셈이죠.

Q : 마지막으로 이 책의 독자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자기 삶에 대한 탐구 없이 일상이 균형을 잡을 수가 없어요. 생리적으로 병과 번뇌에 빠지게 돼요. 살기 위해선 읽어야 해요. 제 삶에 대한 탐구를 당장 시작하는 것이 일용하는 양식보다 더 절박한 생존의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는 지성으로 들어가는 문턱이 사라졌어요. 모든 지성이 인터넷에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잖아요. 굳이 대학 안 가도 모든 자료를 접할 수 있어요. 불경이나『조선왕조실록』까지. 그러니 ‘내가 주부라서’ ‘백수라서’ 혹은 ‘학교를 안 다녀서’라고 할 명분이 없어진 거죠. 다른 사람에게 물어 삶의 지침을 삼는 시대도 지났어요. 성직자건, 지식인이건, 주부건, 그 누가 더 지혜를 갖고 있다고 증명할 방법이 없어요. 저는 그렇게 강의합니다. 주부라고 더 봐주지 않아요.

몇몇 사람이 체제를 비판하며 그 체제의 밖에서 자기들끼리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 해서 체제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강요하는 삶을 거부하고도 생존할 수 있으며, 심지어 그 생존이 행복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남은 유일한 저항일지 모른다. 그 모든 위대한 정치적 약속들은 이미 다 거짓으로 드러나지 않았던가.

기획=조영재 여성중앙 기자, 글=진중권, 사진=박지홍(ca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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