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프랑스 통합 정책의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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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번 사태의 전주곡은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리옹 근교에서 마그렙계(북아프리카 아랍계) 이민자 2세 청년이 폭행당한 사건은 이들, 이른바 '뵈르'들의 대대적인 시위로 이어졌다. 이들은 평등과 인종차별 철폐를 기치로 내걸고 마르세유부터 파리까지 행진하면서 보다 다원적인 사회에 대한 열망을 평화적으로 표출했다.

'뵈르들의 행진'으로 명명된 이 시위는 프랑스인으로 하여금 이민자의 자녀 또한 엄연한 프랑스 사회의 일원이며 이들의 통합이 프랑스 사회의 새로운 과제임을 직시하게 했다. 그러나 최근 사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상황이 그리 크게 개선되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배경에는 해결되기 어려운 두 가지 문제가 놓여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이민자 2세들의 문화적 정체성에 관련된 것이다. 이들의 문화적 좌표는 부모의 나라와 프랑스, 그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중의 부재'로 규정된다. 그들의 부모는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광의 30년'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경제성장기에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들어온 저임금의 비숙련직 이민 노동자다. 그러나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불황이 이어지면서 이들은 프랑스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가 돼 버렸다.

프랑스 정부는 74년 이후 이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했으나 대부분 실패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들의 자녀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속지주의에 따라 프랑스 국적을 받았고 프랑스 학교에서 프랑스 문화에 동화된 이 아이들은 언어도, 문화도 낯선 부모의 나라에 돌아가기를 원치 않았다. 이들의 비극은 부모의 나라뿐 아니라 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프랑스에서도 '동화 불가능한' 이방인으로 간주되는 데서 나온다. 이들이 크면서 부딪친 프랑스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곳곳에 존재했다. '기회의 평등'이나 '능력에 따른 출세'라는 공화주의 원칙들은 이들에겐 다만 근사한 수사에 불과했다.

뵈르들의 행진은 바로 그러한 진입장벽의 존재를 알리는 경종이었지만 그 소리는 거의 같은 시기에 형성된 정치적 기류, 즉 이민자 문제의 정치 이슈화에 묻혀 버린다. 80년대 중반 극우파가 득세하면서 정치권 전반에서 이민자 2세들에 대한 시각은 경직되고 만다. 반이민자 정책을 주요 의제로 내건 극우파 정당 국민전선은 84년 유럽선거에서 11%의 득표율로 돌풍을 일으켰고, 그 후 꾸준히 10%대의 득표율을 기록한다. 공산당을 포함해 그 어느 정당도 극우파가 제기한 이민자 문제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되지만, 특히 중도우파 유권자들이 상당수 국민전선으로 옮겨감에 따라 중도우파 정치인은 더욱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초기 진화도 가능할 수 있었던 이번 사태를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이 '쓰레기''청소해 버리겠다'같은 부적절한 표현으로 악화시킨 것은 우파의 전통적인 지지자들을 향해 말할 수밖에 없는 프랑스 정치 지형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요 사태는 좌절과 분노를 먹고 자란 이민자 2세들과 애써 이들을 외면하는 프랑스 정치 지형의 합작품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짧은 담화를 통해 치안과 질서회복을 반복해 촉구했지만 그 말이 분노한 젊은이들에게 어느 정도 호소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동안 수없이 제시됐던 도시정책과 대동소이한 정책 제안으로 이 소요 사태가 일단락된다 해도 그것은 미봉책일 뿐이다. 프랑스 정치 지형이 변화하지 않는 한, 그리고 이민자 2세들의 정체성이 긍정적으로 확립되지 않는 한 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 보이기 때문이다.

김정희 서울대 교수·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