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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사회적 분배 기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원장

최근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현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으나 집권 여당 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일각에선 복지를 늘리면 그리스나 아르헨티나처럼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한다. 과연 복지는 나라를 망치는가.

 2011년 기준 우리나라 공공사회 복지 지출은 국민총생산 대비 약 9.1%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인 21.7%에 비해 반도 안 된다. 당연히 복지를 감당하기 위해 국민은 더 많이 부담한다. 우리나라의 조세와 사회보장 기여금을 합한 국민부담률이 2011년 기준 국민총생산 대비 25.87%로 OECD 평균인 35.24%에 비해 많이 낮다.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가 넘는 국가는 대부분 고복지(高福祉)-고부담(高負擔) 국가다. 물론 부담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복지 수준을 높이는 것은 국가의 존망을 흔들 수 있다. 연금의 소득대체율을 90%까지 높였던 그리스가 좋은 예다.

 문제는 적정한 복지수준을 찾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국가의 모든 역량을 경제에 집중했다. 복지수준은 저열했다. 그러다 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비로소 실업자·빈곤층 구제를 위한 복지제도가 본격화했다. 이후 10여 년 동안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지에 많은 예산이 투입됐다. 그러나 불평등 정도는 심화됐다. 노동과 자본의 세계화·자동화에 의한 고용 없는 성장,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 국제적 환경 변화는 수출주도형인 우리나라 경제에 그대로 전이돼 자본력이 있는 계층은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됐지만 저소득 근로자는 더욱 열악한 상태에 내몰려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장애인 언니를 돌보는 데 한계를 느낀 젊은 동생은 세상과의 연을 끊었다. 치매 부모를 감당키 힘든 자식은 현대판 고려장을 감행한다. 이러한 극단적 사례가 아니더라도 150만 세대가 경제적 이유 때문에 건강보험 보험료를 체납해 병원을 이용하기 어렵다. 노인 빈곤율,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단연 높다.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 복지는 소비가 아니다. 불평등한 분배는 교육 기회를 제약해 인적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고 세대 간 계층 유동성을 제약하며 사회적 갈등구조를 초래해 궁극적으로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큰 우리나라의 경우 공평한 분배구조는 장기적으로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내수 기반 확충을 통해 고용 증대는 물론 경제의 안정적 성장과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원 마련과 복지제도의 효율성·효과성 제고가 그 다음 숙제다. 우리나라는 사회보험기여금의 55%를 고용주가 부담하는 데 반해 OECD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고용주가 사회보험기여금의 약 63%를 부담해 상대적으로 자본가의 부담이 더 높다. 소득세 누진성은 OECD 회원국 중 일본과 폴란드를 제외하고 우리나라가 가장 낮고 소득세의 수직적 공평성 또한 2000년대 중반 이후 계속 악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자의 소득분배 몫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저소득 노동자들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세제 구조조정이 재원 확보 수단이 될 수 있다.

 세제 구조조정을 통한 복지 확대가 현재 우리의 갈 길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향후 저출산 및 고령화가 지속되고 저성장이 예견되는 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복지의 틀을 재정비하는 것은 필요하다. 영국 사회정책학자 티트머스의 주장이 향후 우리나라 복지 정향을 설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보편주의 원리 위에 선별주의가 결합되는 복지 방식이 더 큰 사회적 위험에 노출된 사람에게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한다는 점에서 더 공평하고 의미 있는 분배의 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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