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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등 8곳에 비밀수용소… 미국 CIA, 테러 용의자 신문 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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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 CIA가 아프가니스탄에 만들었던 비밀수용소(일명 '염전')가 항공사진에 잡혔다. 오른쪽 수용소에 감금돼 있던 10대 용의자가 나체로 콘크리트 바닥에 묶여 있는 벌을 받다가 동사했다. 왼쪽 큰 건물은 버려진 벽돌공장. 비밀수용소는 알카에다 용 의자를 거의 무제한적으로 격리 수용해 고문·취조하기 위해 만들었다. 현재 비밀수용소는 동유럽 국가에서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포스트]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동유럽 등 전 세계 8개 국가에 비밀수용소를 만들어 알카에다 용의자들을 무제한 감금해 두고 고문 등 가혹행위까지 자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워싱턴 포스트는 2일 "CIA가 동유럽 국가 등에서 '블랙 사이트(Black Site)'라는 은어로 불리는 비밀수용시설을 운영해 왔다"고 보도했다.

수용소는 소련 시절 강제수용소와 같은 형태로 명백히 불법이다. CIA는 9.11 직후 테러 용의자를 격리해 무기한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이 같은 불법시설을 국내에 만들지 못하자 동유럽과 중.근동 국가 정보기관의 협력을 얻어 현지에 만들어 두고 직접 운영해 왔다. 신문은 "수용소의 존재는 CIA의 활동을 감독할 권한을 지닌 미 의회조차 모를 정도로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 왔다"고 폭로했다.

비밀수용소에 감금된 테러 용의자는 외부와 전혀 접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문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감자 중 일부가 고문과 가혹행위로 숨진 경우도 확인됐다. 이에 따라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민주주의의 확산을 주창하면서 비밀리에 공산 전제주의 국가 식의 인권유린을 자행해 왔다는 국내외의 비난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언제 만들었나=2001년 9.11테러가 발행하고 6일 만인 9월 17일 부시 대통령은 CIA에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테러행위를 막기 위해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죽이거나 생포하거나 구금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지만 이것이 비밀수용소 설치와 운영을 승인한 것인지에 대해선 명확하지 않다. 워싱턴 포스트는 "부시 대통령이 그런 세부적인 것까지 승인할 필요는 없었다. 백악관과 법무부의 극소수 법전문가들과 관리들에 의해 비밀수용소 계획이 구체적으로 검토.승인됐다"고 보도했다.

◆ 어디에 있나=수용소는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되면서 옮겨다녔다. 현재까지 나라 이름이 확인된 곳은 다섯 군데. 초기 수용소가 있었던 이집트.요르단.아프가니스탄.태국.쿠바 등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동유럽 국가의 경우 불법행위인 데다 테러리스트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기에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이집트와 요르단에는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이 선포되자마자 만들어졌다.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잡힌 테러 용의자들이 우선 수감됐다. 대형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거처다. 2001년 겨울 수감자들이 한꺼번에 질식사하는 사건이 터졌고, 수용소의 존재가 조금씩 알려졌다. CIA는 수용소를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겼다. 카불 북부 오지에 '염전(Salt Pit)'이라 불리는 대형 시설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청소년 용의자가 발가벗겨진 채 사슬에 묶여 밤새 방치됐다가 얼어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2002년에는 태국과 동유럽 국가 한 곳에 수용소가 만들어졌다. 태국의 경우 1년 만에 태국 정부가 불법이라며 철거를 요구해 폐쇄됐다. 쿠바의 관타나모 미군기지 안에도 군 시설과 별도로 작은 수용소가 있었다. CIA는 관타나모 기지 내 미군에 의한 가혹행위가 알려지자 수용소를 폐쇄했다.

◆ 누가 수용돼 있나=워싱턴 포스트는 "이라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검거된 용의자 약 100명"으로 추정했다. 이들은 두 집단으로 분리수용돼 있다. 특급 용의자는 30명 정도. 이들은 동유럽 국가의 비밀 지하시설 등에 갇혀 있다. CIA가 직접 관장하며 취조 담당자 외에 아무도 이들을 볼 수 없다.

◆ 왜 외국에 만들었나=미 국내법에 따르면 어떤 경우든 미국 영토 내에서 가혹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법도 포로에 대한 고문과 가혹행위는 금지한다. CIA는 처음에는 공해상에 배를 띄워 놓고 수용소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안전상의 문제와 물자공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취소됐다. 둘째로는 탈출이 불가능한 곳으로 잠비아의 카리바 호수 가운데 있는 무인도가 검토됐다. 잠비아 정부를 믿을 수 없고, 보건위생의 문제가 있어 포기했다.

◆ 어떤 파장이 일까=국제적으로 미국의 권한과 위상이 크게 손상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인권을 언급할 처지가 아니라는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 국가들에서 반미 감정이 더 격렬해질 가능성이 크다. 미 국내적으로는 부시 행정부의 도덕성 논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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