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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view &] 기업만 다그치지 말고 다가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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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표재용
산업부장

박근혜 대통령이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 듯하다. 소통 행보가 달라졌다.

 ‘불통이 문제’라고 아우성쳐왔던 정치권을 달래기 위해 정무 특보를 만든데 이어 경제 특보단도 구성키로 했다. 뒤집어 말하면 정치권 못지 않게 경제 부문과도 소통이 부족했음을 에둘러 밝힌 셈이다.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기업은 국민과 정치권 못지 않게 소통에 목말라 한다. 최근 만난 기업인이 전하는 산업 현장의 바닥 민심은 이렇다. “안팎의 분위기가 갈수록 심상치 않지만 장관은 물론 정부 당국자와 만나 경제 상황이나 내가 맡은 산업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는 대한민국 핵심산업을 책임진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다. 그의 말대로 한국 기업은 기로에 서 있다. 주력 산업은 하나같이 궁지에 몰렸다. 미국 등 선진국 제조업은 정부 지원 속에 화려하게 부활했고, 중국은 추격을 넘어 추월까지 할 태세다. 기업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족같았던 동료 임직원까지 떠나보내지만 미래가 안보인다. 그런데 정부는 일방통행식으로 투자와 고용을 늘리라고만 다그친다. 팀플레이는 사라졌고, 기업은 잔뜩 쌓인 숙제에 뒷목이 당긴다. 대한민국 기업인들은 외롭고 힘들어 한다. 유일하게 구인난이 벌어지는 곳이 ‘대관(對官)’ 분야라는 자조는 불통의 또 다른 증거다.

 상황이 급박하면 기업들이 먼저 찾아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게 쉽지 않다. 주변의 눈초리가 무서워서다. 정부 당국과 만나려다 ‘로비나 정경 유착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만 살게 뻔해서다. 정부 역시 정경 유착 트라우마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못지 않게 상황이 어렵다는 일본에선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간 소통이 전에 없이 활발하다. 정부가 먼저 기업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취임 직후 제안해 2013년 1월부터 가동중인 산업경쟁력회의가 대표적이다. 경제 회생을 위해 민관이 의기투합하자며 결성된 모임으로 철저한 자유토론 방식이다. 벌써 열아홉번이나 열렸다.

 참석자도 화려하다. 정부 쪽에선 아소다로 부총리를 비롯해 경제재정담당대신, 경제산업대신 등 경제부처 장관은 물론 내각관방장관, 규제개혁담당 장관, 과학기술장관 등 경제 회생에 관여하는 각료들이 총출동한다.

 아베 총리도 ‘일본경제 재생본부장’ 자격으로 빠짐없이 나온다. 민간에선 미무라 아키오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신일본제철 명예회장)을 비롯해 전통 제조업과 첨단 정보기술(IT) 전문 경영인, 컨설팅 전문가, 교수 등 9명이 나온다. 복합리조트 유치, 경제 특구 같은 파격적인 아이디어도 이 모임에서 제안됐다.

  경제 규모도 훨씬 크고 세계 최고 기술로 무장한 산업이 즐비한 일본조차 이처럼 민관이 똘똘 뭉쳐 있다. 사실 이건 우리가 원조다. 산업화 초기 이병철(삼성)·정주영(현대)·구인회(락희) 회장 등 기업인 20여명은 ‘경제재건촉진회’를 만들었다. 모임을 통해 시멘트 ·제철 ·비료 등 기간산업 건설을 촉구하며 산업화 기틀을 다지는데 아이디어를 보탰다.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은 이처럼 정부와 기업이 긴밀히 소통해 이뤄낸 합작품이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대통령과 기업인이 자주, 그리고 허심탄회하게 만나면 생각지 못한 묘책이 나올수 있다. 이왕이면 우리는 좀더 젊게 가자. 신세대 기업인들을 초대해 라운드테이블을 만들면 된다.

 글로벌 동향을 꿰차고 전세계 1% 핵심 인사들도 수시로 만나는 기업인이면 더욱 좋다. 대기업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적격이다. 네이버·다음카카오톡 등 IT 기업의 대표 주자를 더 불러도 좋다.

 경륜 있는 경영인이 필요하다면 박용만 두산 그룹 회장 같은 분들이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가 힘들다면 국무총리나 경제부총리가 만나면 된다.부처 장관들도 조찬특강 같은 형식적인 회동은 이제 접고 기업인과 보다 긴밀히 의견을 교환하자. 이런 모임에 정경유착의 딱지를 붙이려 해도 개의치 말자. 만남을 다 공개하고 자유 토론과 실천만 보장하면 되는 것 아닌가.대통령도 언급한 경제 회생의 마지막 ‘골든타임’도 이제 고작 10개월 남았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모래시계는 계속 줄고 있다.

표재용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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